‘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 전, 서역의 귀족 무덤으로 본 중앙아시아 장례문화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 전, 서역의 귀족 무덤으로 본 중앙아시아 장례문화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2.20 14:17
  • 호수 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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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오타니 탐험대’가 약탈한 아스타나 고분 유적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장례문화를 살핀다. 사진은 전시장에 소개된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오타니 탐험대’가 약탈한 아스타나 고분 유적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장례문화를 살핀다. 사진은 전시장에 소개된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의 모습.

조선총독부가 남겨놓고 간 유물 중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 선보여

출토 위치별로 소개… ‘말을 탄 무인상’, ‘복희와 여와’ 그림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229,655.’

국외소재문화재단에서 2023년 1월 현재 파악하고 있는 해외로 반출된 우리 문화재다. 대부분은 일본(9만5000여개)과 미국(6만5000여개)에 있고 현재까지 반환을 위해 노력 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해외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1500여개에 달한다. 물론 우리가 직접 훔쳐온 것은 아니다. ‘오타니(大谷) 컬렉션’이라 불리는 일제가 패망한 후 놓고 간 문화재다.

국립중앙박물관 세계문화관 중앙아시아실에서 오는 7월 31일끼지 진행되는 ‘영원한 삶의 집, 아스타나 고분’ 전에서는 이처럼 20세기 초 ‘오타니 탐험대’의 수집품 중 85점의 아스타나 고분 출토품에 대한 조사 성과를 소개한다.

일본의 승려 오타니 고즈이(1876~ 1948)가 주축이 된 ‘오타니 탐험대’는 1902년 9월부터 1914년까지 아스타나 고분 등 중앙아시아로 세 차례 원정을 가서 수많은 유물을 약탈한다. 일부는 1916년 조선총독부에 넘어갔고 일본이 패망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이 됐다. 이중 상당수가 중국 신장웨이우얼자치구 투루판시에서 동남쪽으로 3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스타나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곳은 투루판(吐魯番‧토로번)의 옛 도성유적인 가오창고성의 북쪽 근교에 조성된 지배계층의 공동묘지로, 가오창고성이 번영했던 국씨고창국 시기(502~640년)와 당나라 지배기(640~8세기 후반) 동안 많은 무덤이 만들어졌다. 

2미터에 달하는 ‘복희와 여와’
2미터에 달하는 ‘복희와 여와’

20세기 초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하는 실크로드 탐험대들이 아스타나 고분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1959년부터는 중국 신장박물관이 집중적으로 발굴해 현재까지 400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됐다. 폐쇄된 무덤 공간과 투루판의 매우 건조한 기후 때문에 이곳에서는 ‘복희와 여와’ 그림, 나무와 흙으로 만든 인형과 토기, 음식, 종이문서 등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상태로 나왔고, 심지어 대부분의 시신도 미라의 형태로 발견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널방(시체를 안치한 방), 널길(입구에서 널방까지의 길), 옆방 출토 위치별로 구분해 ‘껴묻거리’(부장품)의 성격과 기능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먼저 무덤의 널길과 널방 입구에 해당하는 진열장에는 묘표와 진묘수를 전시했다. 묘표는 무덤 주인의 이름과 이력 등을 기록한 판 모양의 벽돌이다. 중국에서는 주로 돌에 글자를 새겼지만 돌이 귀했던 투루판에서는 흙을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당시 사람들은 먼 훗날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도록 묘표를 만들어 무덤의 널길에 두었다. 널방 입구에는 무서운 모습을 한 상상의 동물인 진묘수 한 쌍을 밖을 향해 두었다. 이는 죽은 사람이 내세에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했다.

복원에 성공한 ‘말을 탄 무인상’
복원에 성공한 ‘말을 탄 무인상’

또한 널길 양쪽의 옆방에 둔 인형들도 볼 수 있다. 문인‧무인‧환관‧여인‧악사 등 다양한 인형들은 죽은 자의 생활을 돕는 시종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인형들의 발아래에는 나무심이 삐져나와 있는데, 이 뾰족하게 나온 나무심을 무덤 흙바닥에 박아 인형을 세웠다. 전시에서는 흙과 비슷한 색과 질감의 대형 받침대에 인형들을 자연스럽게 배열하여 무덤 현장의 느낌을 살렸다. 이중 눈여겨 볼 것은 ‘말을 탄 무인상’이다. 말, 무인의 상반신, 하반신이 분리돼 파편으로 남아 있던 것을 접합해 새롭게 전시했는데 복원 과정에서 컴퓨터 단층촬영(CT) 조사도로 밝혀진 조각상의 제작 방법도 소개한다. 무덤 널방에서 발견된 ‘구슬무늬 명기와 나무 받침’도 1916년 박물관 입수 당시의 목록과 사진을 참고해 세트를 맞춰 전시했다. 

또 전시에서는 박물관이 소장한 세 점의 ‘복희와 여와’ 그림 가운데 가장 큰 그림을 특별 공개한다. 중국 고대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신인 복희와 여와가 그려진 그림은 투루판 지역에서 6세기부터 8세기 중반까지 많이 만들어져 주로 무덤 널방의 천장에 설치됐다. 

전시에서는 2미터가 넘는 복희와 여와 그림을 실물 크기로 복제해 전시실 천장에 매달아 무덤 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도록 연출했다.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뱀의 모습을 한 두 신이 서로 몸을 꼬고 있는 모습으로 우주와 만물이 생겨나는 것을 상징한다. 죽은 사람이 다시 태어나 다음 세상에서 풍요롭기를 바라는 투루판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기도 하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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