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2’ 전, “조선시대 병풍은 실내의 필수 장식품이었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조선, 병풍의 나라2’ 전, “조선시대 병풍은 실내의 필수 장식품이었다”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2.27 14:13
  • 호수 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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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제작된 50여점의 병풍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장승업의 ‘홍백매도10폭병풍’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제작된 50여점의 병풍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장승업의 ‘홍백매도10폭병풍’의 모습.

5개 기관과 개인의 소장품 50여점 통해 병풍의 미술사적 가치 조명 

86쌍 동물 그린 ‘백수도10폭병풍’, 장승업의 ‘홍백매도10폭병풍’ 등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2월 17일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미술관. 가로 길이만 4미터가 넘는 거대한 그림 하나가 관람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거대한 매화나무의 일부를 화면에 꽉차게 그린 작품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가지마다 희고 붉은 매화꽃이 눈길을 끌었다. 놀랍게도 이 작품은 그림이 아닌 조선 후기 대표화가 장승업의 ‘홍백매도10폭병풍’으로 그저 배경이라 생각했던 병풍의 진면목을 잘 보여준다.

‘병풍 취급’이라는 우리말에서 알 수 있듯 배경이나 가림막 정도로 치부되던 병풍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시가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4월 30일까지 진행되는 ‘조선, 병풍의 나라2’ 전은 15개 기관과 개인의 소장품 50여점을 민간 병풍과 궁중 병풍으로 나눠 특징을 비교하고 색다른 미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성했다.

현재 병풍은 제사나 차례 지낼 때나 펼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100여년 전까지만 해도 소파나 침대 같은 필수 가구 중 하나였다. 온돌과 한옥의 특징 때문에 병풍으로 공간을 나누거나 찬 바람을 막아 주며 벽면을 장식하는 역할을 했다. 

또한 장식적 역할도 했기에 병풍에 붙여지는 그림들도 중요했다. 특히 조선시대에 그림 병풍은 궁궐과 민간에서 두루 사랑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어디서 쓰인 병풍이냐에 따라 그림 속 어법과 미감이 서로 다르다는 점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미디어 아티스트로 유명한 이이남(54) 작가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8폭 화조도’가 관람객을 맞는다. 얼핏 보면 꽃과 새가 그려진 일반 병풍처럼 보이지만 폭마다 LED TV를 설치한 일종의 ‘디지털 병풍’으로 고정된 그림이 아닌 시시각각 변화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동물도감처럼 배경 없이 86쌍의 다양한 동물들을 그려 넣은 ‘백수도10폭병풍(작가 미상)’도 인상적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동물들과 상상의 동물들을 그렸는데 상단부에는 날짐승을 하단부에는 들짐승을 배치한 점이 흥미롭다. 풍요로움과 다산, 과거시험 합격, 출세를 기원하며 쏘가리와 잉어 등 다양한 어류를 그린 ‘어해도10폭병풍’도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선시대 제작된 50여점의 병풍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재조명한다. 사진은 ‘백수도10폭병풍(작가 미상)’의 모습.<br>
백수도10폭병풍(작가 미상)

8폭에 인간의 일생을 담은 병풍도 있다. ‘평생도8폭병풍’은 돌잡이부터 결혼, 장원급제, 정승 행차, 결혼 60주년을 기념한 회혼례까지 관료의 이상적인 삶을, ‘경직도8폭병풍’은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며 비단을 짜는 선조들의 삶을 풍속화처럼 표현하고 있다.

궁중화원이 그린 왕실 병풍은 훨씬 화려하다. 현실보다는 판타지 세상 풍경을 담은 그림이 많은데 ‘곽분양행락도8폭병풍’이 대표적이다. 이 병풍은 중국 당나라 명장 곽자의(697 ~781)의 생일 연회를 묘사한 것인데 8폭에 펼쳐진 풍경에는 사람들이 꿈꾸는 낙원이 묘사돼 있다. 85세까지 장수하며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평생 부귀와 복을 누린 곽자의의 일생은 부귀공명, 수복장생의 상징으로 19세기 궁중 혼례용 병풍으로 쓰였다고 전해진다. 또 이국적인 건축물들이 눈에 띄는 ‘한궁도6폭병풍’도 신선들이 살 것 같은 상상 속 궁궐 풍경을 담고 있다.

또 1795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가 있는 화성에 행차한 모습을 담은 ‘화성원행도8폭 병풍’과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 등은 웅장하고 화려했던 궁중 행사의 모습으로 왕실의 권위를 드러낸다. 이중 ‘고종임인진연도8폭병풍’은 조선의 마지막 궁중연향(궁중 잔치) 모습을 묘사한 것이다. 

고종의 망육순(望六旬, 51세)과 즉위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한 잔치를 자세하게 묘사한 병풍의 그림에는 신식군대와 태극기의 모습 등도 볼 수 있다. 1902년 제작 당시 파란색 비단에 보라색 띠를 두른 궁중 병풍의 장황(그림이나 글씨를 감상하거나 보관할 수 있도록 족자, 병풍 등으로 다양하게 꾸미는 형식, 형태, 기술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이번 전시는 미술관 본래 공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작품과 관람객 사이를 최대한 좁힌 공간 디자인도 독특하다. 임시 벽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일부 작품은 아예 공사장에서 쓰이는 철제 구조물을 사용해 선보였다.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시도이면서 병풍과 진열 유리 사이 간격을 5㎝ 미만으로 줄여 관람객이 병풍 그림의 각 부분을 상세히 볼 수 있도록 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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