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3·1절 기념사 새롭게 써야”
[백세시대 / 세상읽기] “3·1절 기념사 새롭게 써야”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3.06 10:39
  • 호수 8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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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올해 3·1절 기념사를 두고 언론이 극과 극의 반응을 보였다. 한겨레·경향신문 등 진보·좌파 성향의 매체들은 비판 일색이다. 한겨레는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나 종군위안부 같은 첨예한 과거사 현안은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날을 세웠다. 

경향신문은 “일본에 반성·사과 요구가 없다”며 “국가지도자로서 3·1운동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고 신상 비난까지 했다. 그러면서  일본이 과거사에 대한 잘못을 빌어야 한다는 역대 대통령의 지난 3·1절 기념사를 거론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을 결코 외면해선 안된다”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는 것”이라 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은 인류 보편의 양심으로 역사의 진실과 정의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반면에 보수·우파 성향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봤다. 

조선일보는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일본보다 앞선 점을 강조하며 “한국, 이제 과거사 싸움을 해야 하는 수준은 넘어선 나라”라며 일본을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규정했다. 

중앙일보도 미래를 주도할 한·일 양국의 청년세대(MZ)가 과거에서 벗어나 상대 국가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키워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양국 정치인들이 과거 관성이나 정치적 이해에서 탈피해 공존과 번영의 미래를 열어갈 큰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어느 쪽이 합리적이고 국익에 도움이 될까. 올해 3·1절 기념사를 계기로 새롭게 들여다봐야할 사안이다. 시대는 변해 가고 상대방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데 해마다 과거사 타령만 되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기자는 언제부터인가 3·1절 기념행사 TV 생중계를 접할 때마다 식상함과 부끄러움, 절망감 등을 느낀다. 태극기를 든 양손을 치켜들고 외치는 만세삼창, 일본이 반성하고 사죄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천편일률적인 기념사, 그리고 유관순 열사를 연상케 하는 복장의 여성들과 농부차림을 한 남자들의 퍼포먼스 등. 

부끄러운 건 일제에 점령당해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고, 누이들이 성폭행 당하고, 천년의 문화유산이 약탈당하는 등 나라가 절단 난 역사 앞에 여전히 무기력한 한국 남자라는 사실 그것이다. 또, 기념행사가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수치스런 과거사를 새롭게 고지한다는 점에서 절망과 함께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경제력에 한참 뒤떨어졌을 때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표명했다. 도광양회는 ‘칼을 칼집에 넣어 검광(劍光)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게 하고 그믐밤 같은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의 사자성어이다. 중국을 개혁·개방으로 이끈 등소평은 생전에 “100년 동안 미국과 대결하지 말고 힘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힘으로 미국을 누르기 전까지는 겉으로 티를 내지 말자는 의미다. 

이 말은 외교·안보에서 으뜸가는 조건이다. 국력이 받쳐주지 않는 외교·안보는 항상 을의 신세에 갇힐 수밖에 없다. 북한이 미국에 당당히 맞서는 이유가 무언가. 바로 김정은 일가가 도광양회 끝에 강력한 핵을 보유해서다.   

한국은 일본 수상들이 조선을 짓밟고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전범들의 위패를 전시한 야스쿠니신사에 곡물을 바친다고 비난한다. 이런 식의 대일 적대감은 실익이 없는데다 오히려 ‘겁먹은 개가 더 짓는다’는 말처럼 약소국으로 비쳐질 뿐이다.   

국민 비위 맞추려 허공에 대고 일본의 과거행위만 비난하기보다는 강한국가가 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우리 힘이 세지고, 자기들 요구가 절실해져 그들 스스로가 먼저 찾아와 용서를 구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게 국민의 자존심이자 품격 있는 국가가 보여줄 행동이고, 이제는 3·1절 기념사를 새롭게 써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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