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

어쩌죠,
기차에 몸을 던지기 전
하염없이 헤치고 온 이 슬픔을
그만, 여기 내려놓고 싶어요
겨우내 찬바람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꽃을 피우던 장미가 한바탕 내린 폭설에 눌리고 말았다. 너무 큰 눈모자를 눌러쓰고 휘청거리는 모습이 안쓰럽다. 저 혼자 온전히 감당해야 할 몫이라도 되는 듯 겨우 버티고 있는 모습이 안나 카레니나를 연상케 한다.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명작 ‘안나 카레니나’의 여주인공이 죽음을 결심하고 기차에 몸을 던지기 전 남긴 독백처럼 어떤 크기의 절망이면 죽음에 이르게 될까. 키에르 케고르의 ‘죽음에 이르는 병’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절망은 끝도 없고 밑도 없고 오직 절망뿐이다. 혼자서는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수렁.
저 힘겨운 한 생명의 절망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할 봄이 도착한 3월이다. 모두 스프링(spring·봄)처럼 기운차게 훌훌 털고 일어나자. 새로운 봄이 시작되었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