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삶과 죽음, 그게 그거다”
[백세시대 / 세상읽기] “삶과 죽음, 그게 그거다”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3.13 11:25
  • 호수 8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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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간단히 벗어나는 삼단논법이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BC341~  270)가 한 말이다. 

전제 1: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죽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제 2: 우리가 죽게 되면 더 이상 살아 있지 않다.

결론: 따라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럴 듯한 논리다. 에피쿠로스는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는 삶을 살라는 유훈을 남겼다. 생전에 물질보다는 정신적 안락을 만끽하면서 살라는 말도 했다. 에피쿠로스는 2300여년 전 사람인데도 이런 현명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인간은 원자로 구성돼 죽음과 동시에 모두 흩어진다”고 했다. 육체가 소멸해도 영혼은 존재한다는 따위의 생각이 그에게는 없다. 

그런데 에피쿠로스 사망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이른바 현대인 중에 에피쿠로스보다 진화되지 못한 사고를 가진 이들이 많다. 죽음 이후의 영생을 믿는 것이다. 한술 더 떠 그 영생이란 것이 좋은 사람은 죽어서 천당에 가 행복하게 살고, 나쁜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스럽게 지낸다고 해석한다. 무지하다면 모를까 대학원에서 박사공부까지 한 사람도 선악의 이분법적 그림 안에 갇혀 있다. ‘천당·지옥’은 살면서 남 괴롭히지 말고 좋은 일만 하라는 뜻에서 지어낸 얘기인데 이를 이성·과학적으로 해석하지 못하고 우주의 진리인양 믿고 따르는 것이다. 

‘철학의 신’처럼 떠받드는 플라톤(BC427~347)까지 영생을 믿었다. 그는 “인간의 육체는 시간이 지나면 소멸하지만 영혼은 불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죽으면 그가 이승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다음 세상이 결정된다는 말도 했다. 선하게 살았다면 영혼은 이전보다는 좀 더 나은 환경에서 태어나지만 악하게 살다 죽으면 좋지 않은 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육신은 전생에 지은 잘못으로 갇히게 되는 일종의 감옥과도 같은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의 말대로라면 가난, 질병, 외로움 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모두가 전생에 악인들이었다는 얘기다. 

기자는 침대에 누워 가끔 오래 전 세상을 떠난 직장 동료를 떠올리곤 한다. 그는 48세에 폐결핵을 앓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와 기자는 동갑나기다. 기자는 그보다 20년을 더 살고 있다. 그의 짧았던 생과 아직 살아 숨 쉬고 있는 나의 삶을 비교한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이 얼마나 가치가 있고 의미 있는 것일까. 20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에 꿈과 같은 순간들, 칼날 같은 고통, 바람과도 같은 허무감 등이 반복됐다. 직장을 세 번 옮겼고, 이사를 두 번 했고, 자동차를 다섯 번 바꿨다. 세계 각국을 다니며 신기한 곳도 보고 맛난 음식도 먹었다. 자식들이 출가해 넓어진 집에서 아내와 단둘이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면서 젊은 시절 가족부양이란 커다란 짐에 치여 하지 못했던 다양한 취미생활도 즐긴다.  

그는 일찍 갔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못했다. 경험을 못한 것과 경험 한 것-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찍 죽어서 경험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살았기 때문에 경험했다는 사실, 이 둘을 놓고 볼 때 ‘운이 좋았다’, ‘잘 살았다’, ‘행복했다’라고 평가하는 게 무의미하다. 따라서 일찍 갔다고 억울해 할 것도 없고, 나중에 간다고 좋아할 것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도 깨달았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삶도 알지 못하면서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고 간단명료하게 정의했다. 이 답변에는 알지도 못하는 죽음에 대해, 겪어보지도 못한 죽음에 대해 미리 걱정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현재의 삶에 충실하라는 교훈이 담겨 있다. 

지금 이 순간 죽는다고 했을 때 남들과 비교해 손해 본다고 억울해할 일도 아니고, 미련을 가질 일도 아니고, 슬퍼할 일도 아니다. 삶과 죽음- “그게 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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