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세상읽기] “길 위에서의 죽음”
[백세시대 / 세상읽기] “길 위에서의 죽음”
  • 오현주 기자
  • 승인 2023.03.27 13:13
  • 호수 86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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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오현주 기자] 

“세계 각국을 여행하다 길 위에서 죽을 거야.”

지인은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호기로 그러려는 거겠지 하고 흘려듣지만 어떻게 보면 괜찮은 생각이다. 사람은 왜 꼭 자기 집 안방이나 병원에서 죽어야 하나, 왜 가족과 지인들에 둘러싸여 숨을 거두어야만 하나. 꼭 그래야만 잘 죽는 걸까. 

비혼으로 사는 일본의 여성작가 마츠바라 준코(76)가 최근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나 혼자입니다’(지금이책)라는 책을 내 화제다. 이 책에서 ‘혼자 죽는 것이 곧 고독하게 죽는 것은 아니다’라는 소제목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고독사’란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고독사에 대한 정의는 무엇일까? 그저 홀로 지내다 죽음을 맞는 것을 말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러한 죽음에 고독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과연 온당할까?”라고 묻는다. 작가는 홀로 사는 사람의 죽음을 두고 고독사라고 칭하는 것에도 저항감을 느낀다. 그녀 역시 홀로 살기 때문에 자신의 죽음을 누군가가 고독사라고 치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녀는 이렇게 주장한다.

“줄곧 홀로 살아온 내가 만약 집에서 죽는다면 고독사라는 말로 퉁쳐질 게 뻔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죽음이 ‘홀로 죽음’으로 불리기를 원한다. 남들의 눈에는 비록 비참한 죽음으로 비칠지라도 내가 살아온 삶의 연장선 위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것일 뿐이다. 고독이라는 쓸쓸한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다 죽음을 맞이했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사람들은 고독사를 홀로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숨을 거둔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가족 등 남에게 시신이 발견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고독사로 죽었다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삶을 살다간 사람처럼 여긴다. 고독사는 곧 ‘빈털터리’, ‘외톨이’, ‘패배자’로 이어진다. 그게 맞는 등식일까.

작가는 또, 죽기 직전까지 행복하게 살았다면 그게 고독사든 뭐든 상관없다고 했다. 50대 후반의 독신여성이 아파트 현관에서 뇌출혈로 쓰러져 숨져 있는 것을 왕래가 뜸했던 언니가 발견해 상을 치른 일을 언급하며 “그 여성의 죽음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형태의 죽음”이라고 쓰고 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은 가령 살아 있어도 뇌출혈의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할 바에는 깨끗이 삶을 마감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작가는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홀로 조용히 죽고 싶다. 이러한 죽음이 최고의 행복”이라며 “스스로 선택해 홀로 살아온 사람이 마지막은 모두에게 둘러싸여 떠나기를 바라는 것은 이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작가는 “죽기 직전까지 행복하다고 느끼며 살았다면 그것으로 좋은 게 아닐까? 그러니 혼자 집에서 편의점 주먹밥을 먹더라도, 친구가 없더라도, 자신이 행복하다면 남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는 상관없다”며 “자신이 행복한지 그렇지 않은지 스스로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했다. 

또 “그러므로 설령 길에서 쓰러져 죽어 신원 미상의 취급을 당하든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죽어 썩어가든 나는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만큼은 큰 의미를 두고 싶지 않다. 죽기 전까지의 하루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라고 책에서 밝혔다.

세계를 떠돌다 비행기 안이든, 호텔이든, 배 위에서든 시간과 장소 따지지 않고 어디에서든 죽음을 맞을 준비가 돼 있다는 지인 역시 일본 여성작가와 비슷한 임종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다 어느 순간 생을 마감하는 것, 그 일에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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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명 2023-03-28 16:19:50
좋은글 공감합니다.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지않는다.
내 삶이 행복하도록 긍정의 사고 실천하는 의지가 노년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70나이에 100세시대 신문을 자세히 읽어보는 노년의 길 초입에서 먼저 걸어간 선배의 삶을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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