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연장자에게 기본 예의는 지켜야
[기고] 연장자에게 기본 예의는 지켜야
  • 이예린 동그라미재가노인복지센터장
  • 승인 2023.03.27 13:14
  • 호수 8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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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린 동그라미재가노인복지센터장
이예린 동그라미재가노인복지센터장

얼마 전 주말 저녁, 사람들이 몰리는 탓에 주차를 하려면 항상 부담이 가는 마트에 들렀다. 역시나 주차장은 차로 넘쳐났다. 주차 자리를 찾아 여러 바퀴를 돌며 지쳐가던 중 누군가 카트를 옆에 높고 짐을 실으려 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얼른 그곳으로 가서 깜빡이를 켜고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미리 찜한 것이다. 다른 차들이 비껴갈 수 있는 공간은 남겨뒀지만 운전이 미숙한 사람들은 지나가기 불편하다고 빵빵거리기도 했다. 이런 상태로 오래 그 자리에 죽치고 있는 것은 나 스스로도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이 자리를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주차에만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가장 순조롭게 모면할 방법은 아무래도 앞선 차가 빨리 자리를 비워주는 것밖에 없어 보였다. 그런데 차주는 기다리고 있는 나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트렁크 뒤에서 시간을 뭉개고 있었다. 트렁크 문을 들었다 놓았다 수십 번 반복하는 것이 마치 나를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족히 10분은 걸린 듯 했다. 참다 못해 창문을 열고 “저기요! 나가시나요?” 하고 물었다.  

그런데 차주는 내쪽으로 걸어오더니 다짜고짜 반말로 소리를 질러댔다. 물건이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아서 열 받아 죽겠는데 왜 당신까지 화나게 하냐는 것이다. 게다가 차주가 던진 말도 참 가관이다. 

“네 표정에 다 써 있어. 네 얼굴을 거울로 좀 봐. 네 상판대기 돈 써서 관리 좀 하라구. 누가 거기 차를 세우라고 했어? 했냐구?” 

내 나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금세 주먹이라도 휘두를 듯이 고함을 질러대는 차주가 무서웠다. 창피한 마음에 차 문을 열고 나가 싸우는 것은 엄두도 못 냈다. 나는 차창을 슬며시 올리고 쥐 죽은 듯이 있었다. 어차피 조금만 참으면 갈 것이고 우리는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고 그 자리에 주차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모멸감을 느끼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서는 절대 안 돼’였다. 길거리나 공공장소에서 젊은이가 노인에게 묻지마식 폭행을 저질렀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말이 통하지 않고 답답하고 신경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막 대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면 세상이 두려워진다. 나이가 무기가 될 수 없지만 그래도 나이를 깡그리 무시할 일인가? 

노인들은 늙어가는 것이 서러운 듯 ‘나이는 숫자일 뿐 중요하지 않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노인들 사이에서만’ 젊게 살자고 하는 이야기로 그쳤으면 좋겠다. 공공장소에서 적어도 자신에게 아무 피해를 주지 않은 연장자에게 반말과 폭언을 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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