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공감 못받는 ‘억까’·‘억빠’
[백세시대 / 문화이야기] 공감 못받는 ‘억까’·‘억빠’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4.03 09:45
  • 호수 8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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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억까’라는 신조어가 있다. ‘억지로 까다’의 준말로 말도 안 되는 근거를 들먹이며 비난하는 것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손흥민은 다 좋은데 골키퍼 포지션을 소화하지 못하기에 월드클래스가 될 수 없어’ 같은 식이다. 반대의 의미로 ‘억빠’라는 신조어도 있다. 과도하게 칭찬한다는 의미의 속어 ‘빨아주다’와 억지로를 합친 말로 역시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칭찬하는 것을 뜻한다. 하는 사업 족족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시장에게 “단군 이래 최고의 시장”이라고 칭찬하는 식이다. 

이러한 신조어는 사회 분위기를 담고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에 억까와 억빠가 넘쳐난다.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으면서 정치적으로 자신과 다른 사고를 가진 진영을 향한 억까와 자기편을 향한 생각 없는 억빠가 난무하고 있다.

일상에서도 이러한 억까‧억빠를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가령 A가 B에게 일방적으로 토요일 오후 1시에 서울 명동에서 만나자고 카카오톡을 통해 통보했다고 하자. B는 그 시간에는 미용실에 있으니 1시간만 늦게 만나자고 한다. 그런데 A가 B의 답장을 본체만체한 후 자신이 통보한 시간에 만남을 강행한다. 결국 B는 부리나케 뛰어와야 했고 숨을 헐떡이며 A에게 넌 왜 소통을 안 하냐고 화를 냈다. 이때 A의 정상적인 반응은 일정을 조율하지 않은 자신의 졸렬함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그런데 되레 화를 내면서 “내가 1시까지 오라고 안내했잖아”라면서 “넌 저번에도 1분 늦고 또 늦네”식으로 말했다고 하자. 여기서 A가 B를 비난하는, ‘지난 약속에 늦은 사실’은 자신이 비판받는 것과 전혀 별개의 문제로 A의 일방통행식 행보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즉, 억까란 소리다. 사람들이 소통하는 장인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이러한 억까가 넘쳐난다.

억빠도 마찬가지다. 어느 대기업 회장이 취임과 동시에 무능함으로 회사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있는 와중에도 자기 잇속만 챙기는 부도덕한 행위를 반복하며 존경받는 기업을 혐오기업으로 만들고 있다고 하자. 그럼에도 사보에서 ‘위대하신 우리 회장님, 딸랑딸랑’식으로 억빠 소식을 싣는다면 임직원들의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억빠 역시 사회 곳곳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정당한 비판과 칭찬은 우리 사회와 문화를 튼튼하게 하는 자양분이 된다. 반면에 억까‧억빠로 가득 찬 세상은 혼탁하기 마련이다. 억까와 억빠는 기본적으로 귀를 막고 ‘나만 맞다’식의 무지한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바보’, ‘이디엇’(idiot), ‘빠가야로’(馬鹿野郞)라고 부른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정당한 근거를, 칭찬할 때는 납득할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보 취급당하기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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