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위의 삶

기를 쓰고 오르려는 그곳에 무엇이 있나
겨자씨만한 꽃들 이제 막 눈 뜨는데
폭우 쏟아지면 휩쓸려 갈 텐데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저, 눈부신 슬픔 !
이른 봄날 담장 옆을 걷다 보면 담을 의지해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작은 풀들이 혼신을 다해 꽃을 피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디지치, 광대나물, 개미자리, 갈퀴덩굴. 꽃이라는 이름도 얻지 못했지만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온 것이라는 듯 온 몸으로 외친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들여다보아야만 꽃이 보이는 저 갈퀴덩굴도 그렇다. 겨자씨만한 꽃이 만들어낼 씨앗은 또 얼마나 작은가. 그런데도 그 작은 씨앗은 어떻게 저런 푸른 길들을 수십 갈래로 내면서 세상을 밀어 올리는 것인지.
발에 밟히는 작디작은 꽃 한 송이가 추운 세상을 다 데우고도 남아 우리가 따숩다. 그 생명이 어찌 슬프고 아름답지 않으랴.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저작권자 © 백세시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