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시 산책] 낙화유수(落花流水)
[디카시 산책] 낙화유수(落花流水)
  •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 승인 2023.04.17 10:35
  • 호수 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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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유수(落花流水)

꽃배 한 잎에 얹혀 저 먼 변방으로 흘러가

듬성듬성 그리움의 텃밭이나 일구면서

별의 심장이나 사랑해 볼까


때죽나무 꽃이 계곡물에 별처럼 흘러간다.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서 운다던 시인도 가고, 앉은 자리가 바로 꽃자리라던 시인도 가버리고 없는 여기, 나도 저 꽃배나 타고 어느 먼 변방으로 흘러가 추억이나 한 채 짓고 살아볼까. 그러다 또 바람처럼 훌훌 어딘가로 흔적 없이 사라질까. 때 되면 꽃 피고 지는 일이 자연스러운 꽃처럼 누구에게도 아무런 빚 남기지 말고 떠날 때가 오면 가벼이 떠났으면 좋겠다. 흔적 없이 사라져도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은 어떤 식으로든 남을 테지만 그 흔적이 다 사라질 때까지 좋은 기억이었으면 좋겠다. 겨울나무를 보고 지나간 봄과 여름과 가을을 기억하듯이, 사라지고 없는 이름으로 조금만 잠시 기억되고 있다가 한 줄 연기가 아슴하게 조금씩 자취를 감추듯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아주 잊혀졌으면 좋겠다. 

문인수 시인의 ‘봄날은 간다’ 4절을 읊조리는 밤. ‘밤 깊은 시간에 창을 열고 하염없더라/오늘도 저 혼자 기운 달아/기러기 앞서가는 만 리 꿈길에/너를 만나 기뻐 울고/너를 잃고 슬피 울던/ 등 굽은 적막에 봄날은 간다’

디카시‧글 : 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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