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전통色이야기 35] 조선 왕, 중국 황제가 입는 ‘황포’ 착용하지 못해
[한국의전통色이야기 35] 조선 왕, 중국 황제가 입는 ‘황포’ 착용하지 못해
  •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 승인 2023.05.15 10:54
  • 호수 8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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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포가신(黃袍加身)

황포(黃袍)는 중국 황제가 입는 옷으로서 조선의 왕은 입지 못했다. 

◎황제의 관대(冠帶)는 어떠하던가?(......) 천제(天祭)를 지낼 때에는 황포(黃袍)를 입었고, 평소에는 흑포(黑袍)에 황색(黃色) 흉배를 하였습니다.<중종 23년> 

고려시대 왕들은 황포 입어

반면 고려시대에 임금은 황포를 입었다. 

◎왕이 강안전에서 황포를 입고 즉위하고 군신의 조하를 받다.(......) 연등회에 왕이 다시 황포(黃袍)와 황산(黃傘)을 사용하다.<충렬왕 즉위년> 

◎임금은 자포(紫袍)를 입고, 태상왕은 황포(黃袍)를 입고 축하를 받다.<충선왕 즉위년> 

◎심왕이 강안전에서 황포를 입고 즉위하니 이분이 곧 충렬왕이시다. 원나라 복식(服飾)을 모방 황포를 거듭 사용하였다.<충렬왕> 

◎공민왕이 황포를 입고 태후 궁으로 가서 충숙왕 후비 명덕태후 홍씨에게 옥책과 인장을 올리다. 

고려시대 임금이 입은 황포는 자황포(柘黃袍), 자황포(赭黃袍), 치황포(梔黃袍), 상포(緗袍) 네 가지 황색인데 자황포(柘黃袍)와 상포(緗袍)는 정무복이고, 치황포(梔黃袍)는 연등소회와 관례 때 처음 입는 옷이며, 자황포(赭黃袍)는 친히 제사를 지낼 때, 조정의 하례(賀禮), 대연회 등의 행사 때 입었다. 

조선시대에는 복색으로서 황포(黃袍)의 기록이 없다. 오직 청일전쟁 이후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만 황포(黃袍)를 입었다는 기록뿐이다. 

◎중화전에 나아가 외진연을 행하셨다. 임금이 익선관-황포(黃袍)차림으로 자리에 오르자 음악이 연주되고, 황태자 이하 종친들과 문무 관리들이 국궁사배를 하자 음악이 멎었다.<고종 38년, 1901> 

◎함녕전에 나아가 외진연을 받았다. 임금이 익선관-황포(黃袍)차림으로 어좌에 오르자 헌가보허자를 연주하였다.<고종 39년, 1902> 

‘황포가신’, 왕이 되게 한다는 뜻

황포(黃袍)는 황제와 임금이 입는 도포로서 황제나 임금을 상징한다. 가신(加身)은 옷을 입히는 것으로서 황포가신(黃袍加身)은 임금 옷을 입히는 것이니 곧 임금이 되려고 하거나 임금이 되게 한다는 뜻이다. 황포가신(黃袍加身)은 황제가 되고 싶지 않았던 송나라 조광윤에게 그의 부하들이 억지로 황포를 입혀 마지못해 부하의 뜻에 따라 북송의 개국 황제가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용어인데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다. 

◎송나라 태조의 황포가신(黃袍加身)이 어찌 송 태조의 마음이랴? 우리 거룩한 조상의 위화도회군도 송 태조와 같도다.<영조 24년> 

◎조광조가 하루아침에 황포가신(黃袍加身)한다고?<중종의 밀지> 

조광조도 황포가신(黃袍加身)의 누명으로 죽임(기묘사화)을 당했다. 

◎그가 도리에 어긋나는 마음을 품었을 뿐만 아니라 밀풍군을 추대할 뜻이 있었는데 밀풍군은 비록 이것을 알지 못해도 늘 황포가신(黃袍加身)을 말하였습니다.<영조 4년> 

오늘날 여러 가지 높은 자리를 지지자들이나, 밑에 있는 사람들의 추대로 본의 아니게 또는 마지못해 수락하는 경우도 황포가신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정시화 국민대 조형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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