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로당서 만난 인연 수기, 2등 나윤숙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삼성아파트경로당 사무장
경로당서 만난 인연 수기, 2등 나윤숙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삼성아파트경로당 사무장
  • 나윤숙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삼성아파트경로당 사무장
  • 승인 2023.05.22 14:33
  • 호수 87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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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질병에 시달리던 어르신 경로당 나온 뒤 회복”

병원만 오가며 두문분출, 우울증까지 걸려 쇠약해져

경로당 회장님 설득으로 경로당 나와 웃음 되찾아

나윤숙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삼성아파트경로당 사무장
나윤숙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삼성아파트경로당 사무장

25년 전,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삼성아파트에 입주하게 됐다. 이삿짐 정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하고 입주서류를 내려고 관리실에 가던 길에 ‘양평동삼성아파트경로당’ 간판을 처음 보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어르신들이 계신 경로당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와는 평생 상관 없는 곳으로 여겼다.

시간이 흘러 아파트 부녀회 총무를 맡았고 자연스레 경로당에도 출입을 하게 됐다. 가끔 어르신들에게  식사를 대접해드리곤 했는데, 의외로 푸근하고 재미있고 편안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10여 년 전쯤 경로당 회장님이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같이 운동해야 우리도 젊어지지”라고 말씀하시는 거였다. 그때 소싯적에 취미로 하던 에어로빅이 생각났다. 그 이후로 친한 사람 몇몇과 함께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경로당에 ‘실버 에어로빅’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재미있게 에어로빅 하다보니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제 생활에 활력소가 된 데다가 어르신들과 ‘친구’처럼 지내게 됐다.

이후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지냈고 회장님이 “기왕에 운동하러 왔으면 경로당에 가입해서 친구 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날 “예” 하고 바로 정식 회원이 됐다. 매일 여럿이서 함께 따뜻한 점심을 먹고 같이 치우고 커피 마시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친하게 지낸 분들 중에는 자신의 몸을 종합병원이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시는 어르신이 있다. 어르신이 스스로를 이렇게 지칭하게 된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부부가 함께 생활하던 중에  남편이 병이 생겼고 어르신은 지극정성으로 간호를 했다. 혼자서 집안 살림을 하면서도 남편을 휠체어 태워 산책도 하고 목욕도 시키는 등 온갖 굳은 일을 다했다. 그래도 동네 주민을 만날 때면 늘 웃으면서 “우리 아저씨 좋아질 거야”라고 긍정적으로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르신은 이후 몸 곳곳에 잇달아 병이 났다. 그중에서도 특히 폐가 문제였다. 폐에 물이 차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숨 쉬기가 힘들어 마취를 못하는 상황이 됐다. 자칫 마취를 잘못하면 깨어나지 못할 수 있어, 수술을 포기하고 약으로만 치료를 받기로 했다. 

그렇게 어르신은 집과 병원만 오가며 바깥 활동 없이 지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우울증을 앓게 됐고 병은 점점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경로당 회장님이 어르신을 찾아갔다. 그러고는 “경로당으로 가자, 경로당에 나와라, 경로당에 나와서 친구들과 어울려야 된다”고 강조했다. 어르신은 회장님의 권유에 설득돼 경로당에 나오기로 했다. 그렇게 큰 기대 없이 찾았는데 다른 어르신들과 매일 함께 밥도 먹고 얘기도 나누시면서 점차 웃음을 되찾았다. 약은 계속 먹어야 했지만 건강이 조금 회복됐고 사는 게 너무 즐겁다고 좋아했다.

그러다 지난해 겨울, 어르신은 집에서 나오다 미끄러져 무릎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안하면 평생 누워 살아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을 하려면 마취를 해야 하는데 폐 문제 때문에 마취도 위험할 수 있었다. 어르신은 수술을 안 받고 평생 누워 살 것인지,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받을 것인지 결정해야 했다. 장고 끝에 “평생 누워서 살 순 없다”며 위험을 무릅쓰고 수술을 받기로 했다. “마취에서 안 깨어나면 그대로 죽는 게 낫다”고 하시면서 말이다.

며칠 뒤 어르신은 수술을 받았다. 정말 다행으로 마취도 잘 되고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다. 현재는 재활병원에서 치료받는 중이시고 곧 퇴원하신다고 한다. 어르신은 이게 다 경로당에 매일 같이 나가 점심을 맛있게 먹고 회원들과 어울린 덕분이라며 좋아했다. 

이번 일을 통해 경로당이 정말로 어르신들의 삶을 바꿀 수도 있는 곳이란 걸 느꼈다. 그리고 우리 아파트의 더 많은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나와 함께 즐거운 생활을 하도록 사무장으로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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