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숙제 언제 다 하지?’ 전, 방학책·그림일기·곤충채집… 방학의 추억 새록새록
‘방학숙제 언제 다 하지?’ 전, 방학책·그림일기·곤충채집… 방학의 추억 새록새록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5.30 11:08
  • 호수 87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학생들이 쓴 일기를 비롯해 각종 생활계획표 및 방학숙제 등을 통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학생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 지를 조명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학생들이 쓴 일기를 비롯해 각종 생활계획표 및 방학숙제 등을 통해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로 학생들이 방학을 어떻게 보내는 지를 조명한다.

1960년부터 현재까지 학생 생활계획표 등 전시… 방학  풍경 그려져

일제강점기 발행된 ‘하휴학습장’, 곤충·식물 채집 관련 자료 등 눈길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요즈음 너무도 게으름뱅이 되어가고 있다. 매일 테리젼(TV) 보고 12시에 자 아침 9시에 일어나 놀고 하는 것이 일과이니 큰일이다.”

1974년 12월 21일 서울 종로구 수송국민학교(1976년 폐교) 5학년에 다니던 이승원 학생이 쓴 겨울방학 일기다. 이제는 60대가 됐을 이승원 학생이 당시 겪은 고민은 어르신 세대 역시 현재 아이들처럼 한없이 놀고 싶어했던 철없는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알게 하며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이처럼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방학숙제에 얽힌 다양한 사연들을 들여다보는 전시가 서울 노원구 서울생활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9월 24일까지 진행되는 ‘방학숙제 언제 다 하지?’ 전에서는 방학 시작과 함께 가정에 배포됐던 시대별 가정통신문부터, 아이들이 작성했던 생활계획표, 각종 방학숙제들을 통해 온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방학식을 마치고 해맑은 모습으로 하교하는 아이들의 사진이 관람객을 맞는다. 한쪽 벽면에는 “가만히 있어도 삐죽삐죽 웃음 나오고 / 내 맘은 벌써 교문 밖으로 달려가고 / 어느 새 내 마음 따라 엉덩이도 들썩들썩”이라는 동시가 함께 소개돼 방학을 맞아 기쁜 아이들의 심정을 잘 보여준다. 이어진 1부 ‘방학을 알차고 보람 있게’에서는 이와 같이 방학과 관련된 각종 자료들을 소개한다. 

1950~1960년대 방학은 주로 어린이가 집안의 일손을 돕거나 혹은 자기계발을 위해 독서 또는 여행하는 기간으로 활용됐다. 1970년대 들면서 방학이 학교생활의 연장선으로 변화했고 과제를 중심으로 자기만의 방학 계획을 수립하여 실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전시에서는 매일 해야 할 일을 빼곡하게 적은 겨울방학 계획서 유인물을 비롯해 이승원 학생의 일기장, 여러 학생이 작성한 원으로 그린 ‘나의 하루 생활 계획표’ 등을 통해 방학 풍경을 들여다본다. 이와 함께 방학 때 여행하면 좋은 곳을 소개한 지도, 게임기‧놀이기구 및 스케이트와 수영복 등을 통해 시니어 세대가 방학기간 무엇을 즐겼는지 소개한다.

하지만 방학은 마냥 놀면서 쉬는 시간만은 아니었다. “오늘은 즐거운 방학입니다. 그런데 숙제가 너무 너무 많았습니다”라는 1980년대 한 학생의 일기처럼 학생들은 각종 과제를 해야 했다. 2부 ‘매일매일 숙제가 정해진 방학 책’에서는 즐거운 방학을 즐기는 학생들의 골칫거리였던 방학책을 중심으로 방학숙제의 역사를 조명한다.

최초의 방학책은 일제강점기 시절로 올라간다. 1924년 여름에 발행된 ‘하기 과제장’이 그 시작이었고 1926년부터 1945년까지는 ‘하휴학습장(夏休學習帳)’이란 이름으로 발행됐다. 광복 이후에도 ‘여름 동무’, ‘여름 공부’, ‘방학 공부’ 등으로 이름이 바뀌어 명맥을 이어간다. 1979년 여름방학부터 1997년까지는 방학 숙제의 대명사였던 ‘탐구생활’이 발행된다. 날짜별로 학습하도록 구성된 탐구생활은 라디오와 TV 방송 일정에 맞춰 공부하도록 진도가 짜여 있어 이를 놓쳤다가 막판에 친구 숙제를 베끼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마지막 공간인 ‘벼락치기로 잠 못 드는 밤’에서 이처럼 개학을 앞두고 밤새워 가며 밀린 숙제를 했던 역사를 살펴본다. 한때 여름방학의 단골 숙제는 곤충 채집과 식물 채집이었다. 

자연에 대해 알게 하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숙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보호 때문에 1994년부 폐지된다. 이후에는 자연 캠프나 곤충농장, 곤충박물관, 식물원 방문 등으로 바뀌었다.

탐구생활도 곤혹이었지만 무엇보다 방학 숙제의 방점을 찍는 것은 일기 쓰기다. 1960년대 전후 기영‧기철 형제의 성장기를 다룬 만화 ‘검정고무신’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에서도 밀린 일기를 쓰느라 고생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큰 공감을 얻었다. 

특히 예전에는 인터넷이 없어서 일기에 꼭 들어가야 하는 날씨를 알아내는 것이 큰 문제였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부모와 함께 도서관에 가서 신문을 들춰보거나 기상청에 문의해 밀린 숙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생활사박물관은 다가오는 올 여름방학 기간에는 전시와 연계한 어린이 교육프로그램도 마련된다. 7월 15일부터 8월 12일까지 토요일에 방문한 가족 단위 관람객을 대상으로 5주간 운영한다. 

김용석 서울역사박물관장은 “옛 생활계획표와 일기에 담긴 소망을 살펴보면, 요즘 어린이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며 “아이들이 방학을 즐겁게 보내면서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이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