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한국인 밥상 책임지던 조기·명태·멸치 이야기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 한국인 밥상 책임지던 조기·명태·멸치 이야기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3.06.05 14:11
  • 호수 87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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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는 현재까지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조기·명태·멸치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어업과 해양 문화를 살펴본다. 사진은 황태 덕장이 설치된 전사장의 모습.
이번 전시에서는 현재까지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는 조기·명태·멸치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 어업과 해양 문화를 살펴본다. 사진은 황태 덕장이 설치된 전사장의 모습.

‘자산어보’ 등 옛 문헌, 각종 도구 등 통해 우리나라 어업 문화 조명

희귀한 조기 울음 영상, 실제 황태 덕장, 좌판 등 재현해 독특한 체험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 5월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 들어서자 익숙한 바다 비린내가 풍겨왔다. 전시장에 한쪽에 설치된 황태 덕장과 옛 좌판을 재현한 공간 때문이었다. 또 개구리 울음소리를 연상케하는, 생소한 조기 울음소리까지 전시장을 메우면서 마치 조기, 명태, 멸치 등 생선을 잡는 배 위에 올라탄 느낌이 들었다.  

이처럼 시각뿐 아니라 청각, 후각 등을 자극하는 자료들을 통해 조기‧명태‧멸치, 일명 ‘조명치’가 지닌 문화적 의미를 찾고 현재 우리나라 바다 생태계가 처한 상황을 되돌아보는 전시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8월 15일까지 진행되는 ‘조명치, 해양문화특별전’에서는  ‘자산어보’ 같은 옛 문헌들, 그물 등 어업 도구와 용품들, 어시장과 어물전, 위판과 파시 등 170여점의 자료를 통해 우리나라의 해양문화를 소개한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먼저 1부 ‘밥상 위의 조명치’에선 국‧탕‧찌개‧포‧전‧찜‧구이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조명치’를 즐긴 우리 문화를 조명한다. 

일례로 빙허각 이씨(1759~1824)가 편찬한 부녀자의 생활지침서인 ‘규합총서’(1809), 이규경(1788~1863)이 쓴 백과사전 형식의 책인 ‘오주연문장전산고’(19세기) 등에는 우리 조상들이 즐겨 먹던 방식이 상세히 소개돼 있다. 대표적으로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멸어좌반’이 소개돼 있는데 “짜지 않은 멸치 1말을 알맞게 볶아내고 살짝 비벼서 부드럽게 한다. (중략) 간장, 볶은 참깨를 넣고 고추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추를 넣어 먹으면 식사로 아주 훌륭하다”고 적혀있다.

정약전(1758~1816)이 쓴 ‘자산어보’ 등에서도 조명치에 다양한 활용법이 소개돼 있다. 가령 자산어보에서는 멸치에 관해 “이 물고기로는 국이나 젓갈을 만들며, 말려서 포(脯)도 만든다. 때로는 말려서 고기잡이의 미끼로 사용하기도 한다. 가거도에서 잡히는 멸치는 몸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는 겨울에도 잡힌다. 그러나 관동에서 잡히는 멸치보다 못하다. 살펴보니 요즘 멸치는 젓갈용으로도 쓰고, 말려서 각종 양념으로도 사용하는데 선물용으로는 천한 물고기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조기잡이에 활용됐던 중선의 모형.
조기잡이에 활용됐던 중선의 모형.

이어지는 2부 ‘뭍으로 오른 조명치’에서는 황태 덕장부터 어시장, 위판장까지 조기와 명태, 멸치에 생계를 의지해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명치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판매와 유통, 가공됐는지를 살펴본다. 이중 현대적 유통망이 확립되기 이전에 바다 위에서 열렸던 생선시장인 ‘파시’와 관련된 자료가 눈길을 끈다. 50여년 전만 해도 서해엔 ‘파시(波市)’, 즉 파도 위의 시장이 있었다. 서해로 북상하는 조기 떼를 따라 수천 척의 어선과 수백 척의 상선이 뒤따르던 풍경이었다. 

조기잡이로 번성을 누렸던 연평도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봄에 서해로 북상하는 조기를 따라 어선과 상선 수천 척이 연평도, 흑산도, 위도 등지로 집결했는데 그중 연평도는 조기잡이 최대 어장이었다. 당시 연평도어업조합에서 하룻동안 오간 돈이 한국은행에서 일일출납고보다 훨씬 많았고, 아이들이 조기를 들고 다니며 빵을 바꿔 먹었던 그 시절 이야기가 시각 자료로 소개된다.

마지막 공간인 ‘조명치의 바다’는 어촌에서 발달한 문화를 조명함과 동시에 현재 우리바다가 처한 위기를 들여다본다. 조기를 잡던 어선의 모형부터 조기잡이 신으로 추앙되는 임경업(1594~1646) 장군을 그린 그림, 창살 모양의 고기잡이 도구가 그려진 옛 지도 등을 볼 수 있다. 이중 주목할 만한 자료는 1940년대 촬영한 명태 관련 영상이다. 명태의 알인 명란은 일본의 패망 이후 가와하라 도시오(1913~1980)가 상품화해 일본에 널리 퍼졌다는 게 통설이다. 최초 공개된 이 영상을 보면 그 이전에도 많이 수입해 갔음을 알 수 있다.

또 조기는 원래 울음소리를 냈던 것으로 전해진다. 개구리 우는 소리와 비슷한데 지금은 그 소리를 듣기 어렵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바다 환경이 변해 조기가 서해로 북상하지 않는다는 가설이 유력하다. 이로 인해 현재는 맛과 모양새가 비슷한 물고기를 찾아서 머나먼 아프리카에서 수입하는 상황이다. 명태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명태는 현재 씨가 완전히 마른 상태다. 2022년 수산물 총수입 121만7969톤 중에서 냉동 명태 수입이 33만6287톤에 달할 정도로 99%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무분별한 남획과 기후변화 등 어획량 감소에 대한 가설이 다양하지만 역시 환경오염에 의한 이상기후로 인한 가설이 유력하다. 전시에서는 조명치가 환경 파괴로 감소되는 상황을 소개하며 해양 생태계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배성호 기자 bsh@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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