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시설 혐오시설로 몰리는 세태 씁쓸
노인시설 혐오시설로 몰리는 세태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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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1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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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필요한 줄 알지만…‘우리 지역은 안돼’

서울 강동구청에서 동네 공원에 있던 30평 노인정을 헐고 50평으로 키워 2층으로 짓기로 했다. 그러자 노인정과 6m 도로를 사이에 둔 주택가 주민들이 노인정이 높아 조망권을 해친다며 건립을 반대했다.

 

구청은 노인정 터를 공원 오른쪽으로 옮기기로 했다. 이번엔 길 건너 아파트 주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노인정이 공원 오른쪽으로 오면 아파트에서 직접 보인다는 게 반대 이유였다.

 

구청에서는 노인정이 보이지 않도록 주위에 나무를 심겠다고 했지만 아파트 주민들은 반대시위를 계속하며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0월 완공예정이던 노인정이 결국 올해 2월말로 완공이 미뤄졌다. 구청 관계자는 “어느 편도 들 수 없는 입장에서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구청과 관계자들의 설득으로 공사는 재개됐지만 씁쓸함을 남긴다. 장애인시설, 화장시설, 노인요양병원 등에 이어 동네 노인정까지 혐오시설로 몰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노인들 갈 곳이 없다=동장군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진 12월 중순 강동구에 위치한 근린공원을 찾았다. 공원 오른쪽으로는 한창 노인정 공사가 진행 중이고 그 옆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원에 나와 있는 이모(72세)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추운데 왜 나와 계세요?”
“집에 있으면 심심하잖아… 사람들이 나와 있다가 추우니까 다 집으로 들어갔어.”
“원래 노인정 위치가 저쪽 주택가 쪽이죠?”
“응. 근데 주민들이 반대해서 저쪽에 못 짓는데… 공사가 끝나려면 아직 멀었어. 그때까지 놀 곳이 없어.”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김모(75세) 할아버지도 “모두 다 늙어. 자기들은 늙은 부모 없나? 진즉에 끝날 공사가…”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강동구청은 새 노인정이 완공될 때까지 구청에서 몇 블록 떨어진 상가건물에 임시로 노인정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노인들은 그곳에 가지 않는다. 이모(72세) 할머니는 “거긴 거리가 너무 멀어… 그리고 그쪽 아파트 노인들이 와서 놀기 때문에 우리가 가면 싫어해… 너무 좁기도 하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임시 노인정을 찾아가 봤다. 채 10평이 안되는 되는 좁은 공간에 30여 명의 노인들이 비좁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거나 재미삼아 화투를 치고 있었다. 구청에서 설치해 놓은 온풍기 덕에 실내 공기는 따뜻했지만 바닥이 차가워 스티로폼을 대 놓았다.

노인정 회장이라는 최모(71세) 할아버지는 “여기는 너무 비좁아서 사람들이 많이 못 와. 이거봐… 앉을 자리도 없잖아.” “주민들이 집값 떨어진다고 반대하고 현수막도 내걸었는데 우리가 떼어버렸어… 이젠 합의해서 공사를 시작했지만 타당한 이유도 없이 (건립을) 반대했으니 잘못된거지…”라며 씁쓸해 했다. 

지자체 예산부족 님비현상 탓하며 무관심=노인정 건립에 주민들의 반대가 이 정도라면 노인관련 요양시설에 대한 반대는 불 보듯 뻔하다.

서울 양천구 신정3동에 지하3층 지상10층 규모로 건립될 예정인 노인요양병원은 지난해 7월 29일 건축허가가 났지만 주변 아파트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착공조차 하지 못한 상태다.

주민들은 양천구청 앞에서 ‘노인요양병원 신축반대 주민결의대회’를 열고 ‘혐오시설 허가 취소하라’ ‘노인요양병원 허가한 구청장 물러가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구청 관계자는 “신정동 병원은 의료법으로 허가된 일반병원으로 일부 치매 노인들이 입원할 수는 있지만, 이를 두고 혐오시설이라며 건립을 반대하면 시설을 지을 곳이 아무데도 없다”고 반박했지만 주민들의 민원은 계속되고 있다면서, “(주민들도) 요양시설이 필요한 줄 알지만 ‘우리 지역만은 안돼’라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납득이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예산부족과 님비현상을 탓하며 노인시설 건립을 외면하는 지자체에 있다.

정부는 2008년부터 노인요양서비스를 보장하는 ‘노인수발보장 제도’를 전국에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2002년부터 매년 100개 이상 노인요양시설을 짓고 있으며, 특히 2007년까지 시·군·구당 최소 1개 소 이상의 공공 입소시설을 신축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지역이기주의와 지자체의 소극적인 자세로 시설 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지자체는 시설 확충을 하지 않는 이유로 대부분 재정여건 취약을 들고 있으며, 일부 지역은 적극적 의지가 부족하다거나 지역민의 님비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시설 확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사회복지협의회·한국노인복지시설협회·한국정신요양협회 등 10개 복지단체로 결성된 ‘사회복지현안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일부 지자체들이 초기투자 부담 과중, 민원 발생 및 기초의회 의원들의 반대 등을 이유로 노인시설의 설치를 막고 있으며, 실제 충남 공주의 경우 노인인구가 2만 명에 달해 노인시설의 수요가 폭증함에도 불구하고 시설 설치 계획조차 세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대책위 관계자는 “지자체와 주민들의 극심한 ‘님비(NIMBY)현상’ 때문에 복지시설의 설치 및 운영이 무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주민들이 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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