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백령도(白翎島) 탐방 (상)
[독자기고] 백령도(白翎島) 탐방 (상)
  • 관리자
  • 승인 2009.10.16 16:08
  • 호수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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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태 대한노인회 경남 진주시지회장
대한노인회 경남 진주시지회 백령도 탐방원 43명이 대망의 백령도 탐방길에 올랐다. 일인당 경비는 26만원이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 시청 직원들이 차에 올라 인사를 드렸다. 문병민 국장은 “시장님이 직접 인사를 드리려고 계획되어 있었으나, 출장 관계로 본인이 인사드리게 됨을 양해해 주십시오. 날씨가 고르지 못하오니 장거리 여행의 건강에 유의하시고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라며 지회 어른들을 배웅했다.

우선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독립 기념관을 찾았다. 숲속에 잠긴 독립기념관 입구에 는 전에 보이지 않던 ‘태초의 빛, 탑’이 눈길을 끈다. 남벌다리를 건너니 우측에 통일 염원동산이 고즈넉한 숲을 이루고 있으며 등산 계단도 잘 다듬어져 있다.

약 300m 앞에는 겨레의 탑이 높이 솟아 손짓하고 있으며, 그 뒤편에 는 독립기념관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제 1전시관에 들어서니 광개토대왕비(모조품)가 6.39m로 높이 솟아 있어 모두 감탄하는 모습이다.

이 글자 중에 판독 할 수 없는 글자가 141자가 된다고 한다. 비석은 유리누각 안에 보호되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 관람 할 수 있으나, 글자가 비석과 같이 까맣게 되어 있어 한 자도 알아볼 수 없었다.

1890년에 재발견 해 탁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지르고 석회를 발라 글자를 손상 시킴으로써 역사 연구에 지장이 많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비문을 고치고 자기네들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하게 된 계 기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옆으로 장소를 옮겨가니 고인돌이 눈에 띈다. 인천 강화군(사적 제 307호)에 있는 고인돌의 복제품으로서 가로 7.1m, 세로 5.5m, 높이 2.6m이며 2004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 유산 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고구려의 벽화고분도 볼 수 있으며, 1971년 공주에서 발굴된 백제 무령 왕과 왕비의 금제관식(金製冠飾, 국보 제 154호) 및 뒤꽂이 등도 관람할 수 있었다.

또 황룡사 모형과 황룡사 치 미(지붕 용머리)의 복제품은 높이 182cm, 너비 105cm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 또 그 옆에는 전북 익산시에 자리한 미륵사 모형도 한 눈에 볼 수 있으며, 사내의 석탑은 국내 최대의 석탑으로 발굴된 석재에 의해 9층탑임을 밝히고 있다.

임진왜란의 전투 상황과 당시 이순신 장군이 승리를 거둔 거북선의 모형도 보인다. 마지막 전시관에 이르러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밀랍상 앞에서 엄숙하게 합장했다. 김 구 선생을 비롯해 42면 임시정부 요원들의 상을 모시고 있다.

이들은 중국 상해에서 임시정부 수립한 후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를 계기로 상해를 떠나 1940년 중경에 도착했다. 중국군과 같이 일본군에 대항하면서 임시정부 사무실을 10군데나 옮 겼다고 하니 그 고생이야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민족의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문화의 발달사와 수 백 차례의 외침 등 특히 조국을 일본 해적단에게 빼앗기고 36년간의 지옥 같은 노예생활, 6.25 동족상잔의 비극 등 에 관한 모습이 잘 전시돼 있다.

이런 역사 속에서 목피초근(木皮草根)으로 연명하면서도 세계 10대 경제 대국을 이룩한 저력 있는 민족이며, 부국강병(富國强兵)임에 자부심을 느껴본사. 독립기념관은 학생들은 물론 전 국민 교 육의 체험장으로 온 세계에 자랑하고도 남을 장소라 생각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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