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지역박물관의 부활
[금요칼럼] 지역박물관의 부활
  • 관리자
  • 승인 2009.10.23 14:53
  • 호수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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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 연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해외여행, 특히 구미 해외여행에서 얻게 되는 작은 즐거움 중의 하나는 지역박물관을 들어가 보는 것이다. 여행을 하다가 계획에도 없이 우연히 들어가 보게 되는 작은 지역박물관에는 그 지역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풍습과 전통을 소개하고, 그 지역 출신으로 유명하게 된 사람의 사진이나 유품을 전시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박물관은 그런 것들에 대한 설명을 곁들여 화보로 만들어 판매하는 경우도 있다.

박물관에 전시된 전시물들을 보면서, 필자는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그냥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해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기 고장의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며 그러한 전통을 이어가는 데 자부심을 갖고 사는 사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박물관을 정부나 지자체가 설립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틀림없이 지역 주민들의 후원금도 한 몫 톡톡히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박물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자원봉사하는 노인임을 확인할 때 더욱 그러하다.

몇 해 전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갔을 때, 공원 내 산재해 있던 원주민 주택을 모아 만든 작은 민속촌에서 자원봉사 하던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그 분은 관광객에게 다가와 이것저것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는데, 나는 그 분의 설명으로 공원 설립 배경과 역사까지도 자세히 알게 되어 뜻하지 않게 역사탐방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분은 공원관리직으로 일하는 딸과 여름을 같이 지내면서 그 곳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하였던 것이다. 낮에는 그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저녁에는 딸과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오랜만에 딸과 함께 한 철을 지내는 행복감을 말할 때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다.

선진 외국에서는 형태와 규모야 어떻든 박물관 안내를 노인 자원봉사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자원봉사자 명찰을 가슴에 붙이고 안내하거나 설명하는 모습에서 여유 있고 활기찬 노년의 삶의 한 단면을 본다. 오랫동안 자원봉사 하는 노인들 중 어떤 분들은 유물 발굴이나 정리 작업에 참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사실은 지역에 많은 박물관들이 있다. 고택, 종중 유물전시관, 향토박물관, 향교 등이 다 박물관이다. 그런데 그런 박물관이 거의 다 문이 닫혀 있거나, 누구 하나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다. 어떤 곳은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철제문으로 봉쇄해 놓은 곳도 있다.

혹 누가 설명해주는 경우가 있지만 뭔가 감추어야 할 것이 있는 듯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뭘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하느냐는 듯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일 때에는 눈치 보여 대충 보는 듯 마는 듯 하고 나와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다.

어떤 곳은 살림집을 겸해 오래 머물기가 어려운 곳도 있다. 어쩌다 안내 책자를 비치해 놓은 곳을 보면 반갑기는 한데 어려운 말과 조악한 그림으로 전혀 재미있지도 교육적이지도 않다.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대도시에 급조된 조형물을 많이 만들기보다, 전국 구석구석에 있는 다양한 형태의 향토박물관을 복원하고 재정비하여 관광객들이 그 지역의 역사, 풍습, 전통 등을 알고 음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 디자인된 안내 팸플릿도 비치하고, 훈련된 노인 자원봉사자의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진다면 외국 관광객들도 한국의 문화수준을 높이 평가하게 될 것이다.

노인을 관광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나라의 향토문화안내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향토문화를 관광자원으로 재정비해야 하고, 안내 팜플릿 제작과 안내원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향토문화안내를 지망한 노인 자원봉사자에 대한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나라는 전국토가 박물관이다’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그 박물관을 갈고 닦을 전문가 및 자원봉사자가 필요하고, 그 자원봉사의 일은 노인의 몫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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