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0’, 1980년 5월 17일 문 연 화평반점에선 무슨 일이…
영화 ‘1980’, 1980년 5월 17일 문 연 화평반점에선 무슨 일이…
  • 배성호 기자
  • 승인 2024.04.08 13:56
  • 호수 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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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 개업한 철수 할아버지 일가의 눈으로 광주민주화운동 조명

영문도 모른 채 풍파에 휩쓸린 소시민의 비극 담겨… 주·조연 호연 빛나

이번 작품은 한 중국요리집을 중심으로 신군부의 잔혹성과 평범했던 소시민들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이번 작품은 한 중국요리집을 중심으로 신군부의 잔혹성과 평범했던 소시민들이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진은 극중 한 장면.

[백세시대=배성호 기자]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신군부가 일으킨 12‧12 군사반란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거침없이 진격했던 신군부의 악행을 재조명한 이 작품은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7일 12‧12 군사반란 5개월 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1980’이 개봉한다. ‘서울의 봄은 오지 않았다’라는 홍보 포스터를 내세운 이 작품은 우리 근현대사의 가장 큰 상흔인 5‧18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루며 주목받고 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다루지 않았지만 전두환과 신군부는 자신들이 세운 집권 시나리오를 차근차근 진행해나간다. 그 조치의 하나로 1980년 5월 17일 제주도를 제외한 지역만 한정해 발령돼 있던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같은 시각 광주광역시에선 중국요리집 ‘화평반점’의 개업식으로 떠들썩했다. 일평생 남의 가게 주방장으로 살아온 ‘철수 할아버지’(강신일 분)는 드디어 자기 손으로 가게를 열었다. 맏며느리인 ‘철수 엄마’(김규리 분)는 만삭의 몸으로 홀 서빙을 돕고, 결혼을 앞둔 둘째 아들 ‘상두’(백성현 분)는 예비 신부와 인사를 하러 온다. 철수는 서울에서 내려와 화평반점 옆집에서 미장원을 운영하는 ‘영희 엄마’(한수연 분)의 ‘영희’와 친하게 지낸다. 

온 동네 이웃들이 모여 축하를 건넨 화평반점의 첫날이 지나고, 다음날 아침 할아버지는 둘째 아들과 손주 ‘철수’와 함께 목욕탕에 들러 몸단장을 하면서 본격적인 첫 장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룰 줄 알았던 철수네 가족의 기대와 달리 광주의 거리는 온통 계엄군과 최루탄으로 가득 찼다. 거리는 계엄령으로 봉쇄되고 무장한 군인들이 광주 시민들을 무참히 짓밟는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아버지의 유일한 자랑이었던 장남 ‘철수 아빠’(이정우 분)는 계엄군에 쫓겨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그러던 중 학생들이 군인을 피해 중국집 안으로 몰려든다. 영문을 모르는 철수네 가족은 이들을 도와주지만, 도와주는 과정에서 격하게 반응을 했다는 이유로 상두가 군인에게 끌려간다. 상두는 모진 고문을 받았고, 이 여파로 다리를 절게 된다. 

철수네 가족의 비극은 계속되고 5월 26일 그날 최후의 항전이 전남도청에서 열린다. 철수 할아버지는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는 이들을 위해 맛있는 자장면을 준비해서는 리어카에 싣고 찾아간다. 비장하게 마지막 야참을 즐기던 그 순간 총성이 울려 퍼진다. 

충무로에서 30년간 미술감독을 지냈던 강승용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이 작품은 ‘서울의 봄’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전두환과 군인들이 광주시민들의 숭고한 민주화 의지를 총과 탱크, 그리고 헬기로 무참하게 짓밟은 이야기를 다룬다. 

기존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작품들과 달리 오월의 광주를 소시민의 시선에서 그린다. ‘화려한 휴가’(2007)처럼 군부 쿠데타에 항거한 데모의 행렬이나 계엄군의 포격에 맞서 시민군이 저항하는 현장을 쫓지 않는다. 독일의 위르겐 힌터페터 기자와 그를 태우고 달린 택시운전사 김사복 씨의 이야기를 다룬 ‘택시운전사’(2017)처럼 자신의 이름 세 글자보다 누군가의 어머니와 아버지 혹은 삼촌과 이모라고 불린 이웃사촌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이를 통해 결혼과 출산, 개업과 성공이란 꿈을 지녔던 평범한 소시민들을 폭도와 괴뢰로 매도했던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잔혹성을 부각시킨다. 

배우들의 호연도 빛이 난다. ‘공공의 적’, ‘실미도’ 등의 영화와 최근 막 내린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등을 통해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줬던 강신일은 이번 작품에서 평생의 꿈을 이뤄 행복한 여생을 꿈꾸다 하루아침에 온 가족이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철수 할아버지’를 연기하며 작품을 이끈다. 

김규리도 맏며느리로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철수 엄마’ 역을 맡아 극의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와 함께 ‘상두’를 연기한 백성현과 ‘영희 엄마’로 분한 한수연 등 조연들의 열연도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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