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12] 치매, 이제는 외롭지 않다
[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12] 치매, 이제는 외롭지 않다
  • 중앙치매센터
  • 승인 2024.04.15 09:36
  • 호수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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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려상  박순조] 자정이 넘었다. 섣달 칼바람은 동네 어귀 당산나무 밑동까지 벨 기세다. 텔레비전에서는 아나운서들이 연거푸 말한다.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이 강추위에 살아 있다면 그것은 기적이다.

우리 군 재난상황실에서는 초저녁부터 군수님과 면장님이 진두지휘하며 옆에서 떨고만 있는 나를 배려해서 하는 수없이 집으로 왔다. 반백년이 넘도록 유달리 아웅다웅했던 집안은 무덤처럼 고요하다. 

큰길에서는 군·관·민이 동원돼 남편을 찾느라 경찰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려니 너무나 허무하다. 조금 더 참을 걸. 조금 더 이해할 걸. 후회와 회한만이 집안을 메운다. 왜 하필 길에서. 왜 끝까지 상처만 주는지. 지나온 가시밭길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길 잃은 남편 16시간만에 돌아와

그때였다. 시름을 깨는 한 통의 전화다. 전화기 너머로 귀에 익은 경찰관 목소리가 들린다. “할아버지 찾았어요. 몸이 굳어 병원으로 가야 하니 그쪽으로 오십시오.” 미움인지 반가움인지 총알처럼 튀어나온 말은 “왜 안 죽어. 명도 길지.”

응급실에서 마주한 남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멍하니 앉아 있다. 나도 할 말을 잊은 채 그냥 쳐다만 봤다. 집 나간 지 열여섯 시간. 늦은 밥상 앞에서 틀니가 흐를 정도로 밥을 먹는 남편을 바라보며 세월의 무상함과 나이에는 장사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다.

올해 여든인 남편은 2대 독자다. 어머님 이십 초반에, 아버님은 유복자를 두고 만주 독립군을 돕는다는 이름으로 떠났다. 어머님은 아들 하나만을 위해 재봉틀이 닳도록 살았지만, 아버님 소식은 없었고 결국 가슴에 묻은 채 돌아가셨다.

남편은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 눈, 비가 오고 바람이 불어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강산이 세 번이나 변해도 새벽마다 산소에 문안드리러 갔다. 그런 남편을 보며 백 가지 중에 그 한 가지는 괜찮다 여기며 살았는데 언제부턴가 그 길이 뜸 하다는 것을 알았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젊은 시절, 뚜렷한 직장은 없었어도 신문과 책을 손에 쥐고 살았으며, 콩 난데 콩 나고, 팥 난데 팥 났으며 총기 백배했던 터라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더욱 안타깝다.

나 역시 늦은 나이까지 인근 병원 치매 병동에서 간병인으로 일했지만, 내 남편은 치매가 아니길 바랐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정밀 검사도 받지 않았다. 

전화위복이라 했든가, 몇 차례 실종신고가 이어지는 바람에 관에서 더욱 신경을 써 치매안심센터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이런 곳이 있다는 것도 예전에는 몰랐으며 나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 아예 관심도 없었다. 

치매 검사를 받고 주간보호센터에 갈 등급이 나왔지만, 때로는 멀쩡한 정신으로 그런 곳에는 안 가겠다 떼를 쓰니 하는 수 없이 배우자 요양을 하고 있다. 늘그막에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도서관 문학 공부, 그림 그리기, 그리고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독서 도우미를 하며 보람 있었던 일 등. 다 접어야 했다. 

살면서 못 배웠다고 늘 구박만 받다가 공부하러 간다고 책가방 들고 나서면 그리 좋아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당신 옆에만 있어도 아무 반응이 없다. 그리도 총명하던 사람이 정녕 기억이 없는가. 걸음도 잘 걷고 밥도 잘 먹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안타까워 지켜보는 내가 더 우울하고 아프다.

나라에서는 물론 관내 치매안심센터에서는 이런 아픔을 겪는 환자와 가족들의 질 좋은 삶을 위해 무척 힘을 쓰는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 치매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아픔을 나누는 자조모임도 있다. 어떻게 하면 환자를 좀 더 수월하게 돌볼 수 있을까 저마다의 경험들을 주고받다 보니 많은 도움이 됐다.

얼마 전에는 옷 위에 붙이는 ‘배회가능 어르신 인식표’를 달고 나갔다가 주변 사람의 신고로 돌아왔으며, 그저께는 위치 추적기를 차고 백리 밖까지 갔어도 내 휴대폰으로 감지가 되어 무사히 찾아왔다. 위치 추적기는 자동차 길을 가르쳐주는 아가씨보다 더 똑똑하고 대견스럽다.

친정엄마도 여든에 치매로 돌아가셨다. 그때는 나라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고 빈방에 하루 종일 갇혀 지냈다. 올케가 일하러 나가면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문을 잠근다. 혼자서 밥 먹고 대소변까지 보고는 그것을 손에 쥐고 벽에 바르기도 했다. 

치매안심센터 있어 외롭지 않아

하지만 딸자식이 되어 아무런 도움도 못 드렸다. 그렇게 두 해가 지나고 엄마는 방에 갇힌 채 쓸쓸히 눈을 감았다. 남편이 치매 판정을 받고 제일 먼저 엄마 생각이 났다. 담당 의사 앞에서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다. 그리고 결심했다. 웬만하면 방문은 잠그지 않겠다고. 

치매 약값 한 달 4만여 원, 그마저 절반을 도움 받으니 정말 감사하다. 오락가락하는 정신에도 약만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 남편이 더욱 고맙다. 늘 밖으로 나가려는 행동을 조금이나마 멈추려고 쌀에 쥐눈이콩을 버무려 골라내게 했더니 두세 시간은 집중하기도 해 그사이 잠시 내 일을 본다. 

대낮처럼 밝고 입안에 혀처럼 해결해주는 치매안심센터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다. 비가 그치고 바람을 쐬러 아들 차에 오르는 남편을 보고 손 흔드는 오늘이 그래도 행복이다.

치매상담콜센터  1899-9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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