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지공거사는 마음이 불편하다오 / 김동배
[백세시대 금요칼럼] 지공거사는 마음이 불편하다오 / 김동배
  •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 승인 2024.04.15 10:41
  • 호수 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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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배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김동배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명예교수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큰

노인 무임승차제도는 유지돼야

다만, 지하철 적자 문제에 대해

지자체의 그때그때 처리는 한계

중앙정부가 타개 방법 강구를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에 대한 찬반 여론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지공거사(地空居士,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하는 사람)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매우 불편하다. 공짜로 타는 건 좋은데, 공짜 승객이 너무 많아 지하철이 적자 운영된다는 소식 때문이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똑똑하다고 자처하는 어느 젊은 정치인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에서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은 역은 경마공원역이라고 비꼬는 발언을 함으로 이 이슈에 불을 다시 붙였다. 

경마장에 가서 도박을 즐길 정도로 돈 있는 노인에게까지 공짜로 타게 해서 지하철 운영에 부담을 주는 것을 젊은 세대는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된다고 했다. 매우 고약하고 속이 뻔히 보이는 정략적인 발언이다. 자기가 노인들에게 호감을 주는 인물이 아님을 알기에 젊은이 표라도 얻어 보겠다는 얄팍한 갈라치기 수법이다.  

그의 주장에는 억지가 많았다. 지하철 전체에서 무임승차 비율이 가장 높은 역은 경마공원역이 아니다. 이슈를 강하게 부각하기 위해 지하철 4호선을 선택했는데 그 방법이 저급했다. 또, 무임승차 노인들의 무게만큼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수치는 제시하지 못했다. 무임승차 인원의 무게와 전기요금의 관계를 규명하려면 정밀한 과학적 조사를 해야 할 것이다. 

시설, 안전, 보수유지 등 비용을 증가시키는 모든 요인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는 경마장 입장료가 2000원, 베팅액이 100원부터인 걸 아는지, 그 정도의 적은 돈으로라도 마음의 활기를 되찾아보겠다는 노인의 절박한 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 노인들의 상당수가 고독이라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모를 것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분석과 같이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는 그로 인한 비용보다 편익이 훨씬 더 높은 제도이다. ‘노인의 사회 활동 증가 → 정신적 및 신체적 건강 향상 → 노인 의료비 절감’은 국제적으로 수많은 연구에서 공식처럼 입증된 인과관계 요인들이다. 

지하철 무임승차는 노인의 사회 활동을 촉진하는 여러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하고, 우리나라 노인 공경의 전통(지금은 많이 약화되었지만) 중 대표적인 제도이다. 비용이 든다 해서 이런 중요한 제도를 없애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사실 무임승차 때문에 지하철이 적자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더 얻을 수 있는 수익이 줄어들어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것은 맞다. 손실액이 연 1조 원이라는 통계도 있다. 노인 무임승차 비율은 전체 승객의 20% 수준인데, 향후 이 비율은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라 증가할 것이다. 현재 40%가 넘는 노선도 있다. 

경로우대의 명분만을 위해 이 논란을 계속 방치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지자체가 그때그때 지원하여 처리하는 것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이젠 중앙정부가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강구할 때가 된 것 같다. 교통 바우처 제공, 연령 상향 조정, 이용시간 조정 등 그동안 제시되었던 대안들과 함께 합리적인 정책이 수립되길 바란다. 

어느 경우이든 노인 무임승차 제도는 유지되어야 한다. 그 이론적 근거로서 심리학자인 존 크룸볼츠의 ‘계획된 우연이론(Planned Happenstance Theory)’을 적용해 보자. 다양한 우연적인 사건들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성공을 목표로 계획했다기보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열심히 했을 뿐인데 우연히 성공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연한 사건을 기다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경험하며 타이밍을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계획적인 시도를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노인들이 특별한 목적이 있지 않더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모임에도 나가고, 단체에도 가입해서 활동하다 보면 우연히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거나 혹은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노인들에게 무임승차는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다. 

OECD 국가들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율 제1위라는 오명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이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거론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차제에, 지하철 개찰구에서 교통카드를 태그할 때 나오는 말 “행복하세요”는 제발 빼주었으면 한다. 공짜니까 많이 타고 다니면서 행복한 삶을 사시라고 기원하는 게 아니라 “여기 공짜 손님 지나갑니다”라고 외치면서 면박주는 것 같아 불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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