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익표 변호사(실버 파일럿)
지익표 변호사(실버 파일럿)
  • super
  • 승인 2006.08.1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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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가슴에 창공을 품는다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어릴 적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 봤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생활이 바빠지면서 그런 생각은 단지 꿈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여든이 넘은 나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실버 파일럿’으로 불리며 초경량비행기 자격증을 획득한지 6개월여 만에 700km의 장거리 왕복비행에 성공해 화제를 모았던 지익표 변호사를 만났다.

마른 체격,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 눈가에 파인 주름에서 세월의 흔적이 짙게 묻어나지만, 강인한 눈빛과 자신감 넘치는 말투에서 여든이 넘는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실버 파일럿’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지익표 변호사의 첫 인상이다.


25년 생으로 올해 81세인 지 변호사는 2005년 5월 14일 초경량비행기 자격증을 한번에 따내고, 이와 함께 HAM(아마추어 무선사)자격증도 보름 만에 획득해 화제를 모았다. 국내에서 초경량비행기 자격증을 소유한 600여 명 중 최고령으로,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다.


그는 자격증 획득에 만족하지 않고 불과 6개월 만인 지난해 11월 15일 700km의 장거리 왕복비행에도 도전해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쳤다. 그가 이번에 조종한 비행기는 CH701 기종으로 우리나라의 초경량항공기 중 가장 업그레이드된 기종이다.

 

이번 비행은 경기도 화성시 소재 어성 비행장을 출발해 공주와 담양을 거쳐 전남 땅 끝 녹동비행장에서 하루 밤을 묵은 후 그의 고향인 완도읍에에 가 모교인 여수 수산중교 등 6개 초·중·고등학교 상공을 선회하며 오색의 연막을 터트리는 행사를 가졌다.

 

그는 “고향땅인 전남 완도에 손수 경비행기를 몰고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도전정신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세가 험한 지역을 지날 때마다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심하게 흔들릴 때 조금 힘들었지만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고 비행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나이는 숫자일 뿐 걸림돌 될 수 없다

젊은 사람도 하기 힘든 경비행기 조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1974년에 세계일주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상공에서 본 우리나라 산야가 기막히게 아름답더라고… 그때 느꼈죠. 세상이 참 넓구나.” 게다가 당시는 유신독재 시대여서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다는 그는 “하늘을 날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그가 스틱을 잡은 것은 20년이 흐른, 지난 2004년 바로 80세 되던 해다. 처음에는 헬기를 조종하고 싶었지만 국내에서는 헬기 조종 자격증을 따는 것이 불가능해 초경량비행기로 눈을 돌렸다.

 

그는 아내에게 “화성에 조사할 것이 있어 간다”는 애매모호한 말만 남기고 몰래 조종강습을 받으러 다녔고,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날씨를 살피는 일이 습관화 됐다. 그의 이런 모습에 아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고.

 

“매주 비행을 하러 갈 때마다 아내에게 거짓말 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다”는 그는 비행시간 20시간이 돼서야 이실직고 했다. ‘사실은 비행기를 타러 다녔다’는 고백에 아내와 가족들은 결사반대 했다. “다른 취미도 많은데 이 나이에 왜 하필 비행기냐는 거야…”


아내에게 딱 한번만 경비행기를 타보라고 권했다. 타본 후에도 반대한다면 다신 타지 않겠다고 약속과 함께. “아내가 비행기를 타기에 앞서 비행교관들을 매수( )해 특히 안전성을 강조해서 잘 말해달라고 부탁했어. 안 그러면 다신 비행기를 못 타게 되니까…”(웃음) 그의 손에 이끌려 경비행기를 탄 아내는 안전성을 확인한 뒤 마지못해 승낙했다.


비행을 통해 잊고 살았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는 그는 “나이 때문에 못하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는 것을 노인들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고 했다.

모든 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한눈에 보기에도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는 그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 비행기를 조종한다는 것이 조금은 무리가 되지 않을까  “몸은 비록 노화됐지만 마음만은 40대”라며 호탕하게 웃는 그는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라고 했습니다. 신체가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자연현상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마음먹기에 따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고 그 뜻을 설명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뭘까  우선 술, 담배를 하지 않고, 저녁 10시면 잠자리에 들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이와 함께 아침에 일어나면 맨 먼저 소금으로 양치질을 하고 찬물로 머리를 가볍게 찜질하는데 “찬물 찜질은 잠을 깨워주고 머리에 기를 살려 주기 때문” 이라고 이유를 설명한다.

 

그만의 방식으로 하는 가벼운 스트레칭도 한 가지 비결이다. 그는 “특히 아침에 눈을 떠 몸이 무겁다 싶을 때 바로 일어나서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며 건강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실버 파일럿’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사실 그는 국내 1세대 인권변호사로 더욱 유명하다. 1992년 사할린 문제 위원회를 만든 뒤 당시 뜻있는 전국 변호사 200여 명을 규합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할린 동포에 대한 위자료 청구소송을 공식 제기했다.

 

당시 일본 정부가 제시한 타협안을 받아들여 소송을 취하했고 32억엔(약 320억원)을 받아내 현재 500가구 정도가 고국 땅 안양으로 돌아와 새 삶을 살고 있다. 이와 함께 정신대 노무자 등 일본 전쟁 피해자들에 대한 소송을 주로 맡으며 소송비용 모두를 사비를 털어 부담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늘 국치일인 8월 29일 ‘거사’를 벌이는데, “국치일을 기억하자는 의미”라며 청소년들이 우리나라 역사의 아픔을 알고 기억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큰마음과 도전정신을 갖고 먼 앞을 내다보고 살라’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보다 큰마음을 길러주기 위해 무료 비행학교를 여는 것도 계획하고 있다. ‘늙을 틈이 없다’는 그의 말이 이해가 되는 듯싶다.

 

주름진 입가에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푸른 하늘에서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는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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