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평전(評傳) 집필과 발간의 즐거움 / 이동순
[백세시대 금요칼럼] 평전(評傳) 집필과 발간의 즐거움 / 이동순
  • 이동순 시인
  • 승인 2024.04.29 13:48
  • 호수 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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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순시인
이동순 시인

평전엔 개인사, 시대사 함께 담겨

인물뿐 아니라 여러 지식도 접해

도서관 구석 샅샅이 뒤져 자료 찾아

‘백석시선집’ ‘나는 홍범도다’ 집필

후세대에 기록 남길 수 있어 기뻐

평전이란 말 그대로 개인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그런데 거기에는 단순히 일생의 경과만 시간적 순서로 펼쳐가는 것이 아니라 필자의 논평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우리가 몰랐던 개인의 구체적 일생도 중요하지만 책의 요소요소에서 제기되는 필자의 비평적 해석은 생애보다 한층 중요하다. 

평전의 중심인물이 가장 중앙에 놓여있고, 그 주변 인물들과 역사적 사건들이 교직(交織)되어 다채롭게 전개된다. 그러므로 평전 한 권을 읽으면 중심인물이 살았던 개인사와 시대사를 함께 통찰하게 된다. 

한 인물이 자기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갔는지, 또 자신에게 다가오는 세월의 파도와 온갖 위기를 과연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는지 그 항목들은 매우 중요하다. 평전의 도처에서 경험하게 되는 이런 극복의 양상은 독자들에게 삶의 특별한 지혜와 용기를 얻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만났던 다수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가 잘 몰랐던 새로운 지식을 뜻밖에 습득할 수도 있다. 이것이 평전을 읽는 별도의 재미이자 즐거움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주인공의 개인사를 철저히 더듬고 조사해서 아주 미세한 에피소드나 사진 자료, 신문기사, 잡지기사, 기타 다양한 관련 사실까지도 적극적으로 수집해서 활용해야 한다. 이런 철저함과 성실성이 반영되지 않은 평전은 대체로 밋밋하고 평면적 서술을 면치 못하게 된다. 독자들은 평전을 읽으며 특정시대의 시민들이 겪었던 삶의 고뇌와 아픔을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리하여 평전을 읽는 동안 독자는 그 시대의 내부로 들어가 당대의 시민이 되어 고락을 함께 누린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평전의 국내 인물들은 전태일, 소태산, 김남주, 장기려, 이율곡, 노회찬, 윤선도, 김수환, 홍범도, 김원봉, 안창호, 한갑수, 이휘소, 노무현, 문익환, 한용운, 조소앙, 이회영, 이현상, 방정환, 장준하, 최승희, 이육사 등이 눈에 띤다. 더 많이 있지만 여기 일일이 명단을 소개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대개 독립투사, 종교인, 정치인, 문인, 과학자, 무용가 등으로 활동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필자가 최근까지 다룬 평전 인물 대상으로는 홍범도, 백석, 왕평, 김자야, 남인수 등이 있다. 독립운동사, 혹은 대중문화사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 필자의 개인적 흥미와 관심의 대상들이다. 

여러 해 전 나는 분단시대 문학사에서 매몰돼 잊혀진 시인들의 전집을 집중적으로 발간한 일이 있다. 당시 한편의 시작품이라도 더 수집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던 활동이 떠오른다. 그 과정에서 시작품이 해당 인물의 정신적 편력을 고스란히 반영해주는 중요자료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렇게 전집 발간 작업이 차츰 구체적 형태를 드러내면서 해당 시인의 전체 생애사가 확연히 그 모습을 갖추어 가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백석의 평전작업도 가능했고, 또 홍범도 장군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성과도 얻을 수 있었다. 백석 시인만 하더라도 그는 우리 시문학사에서 망각의 존재였다. 도서관 구석의 빛바래고 퀴퀴한 냄새나는 서가를 샅샅이 뒤져 그의 작품과 남긴 글귀, 메모, 교유록(交遊錄), 사진, 신문기사, 잡지의 주소록이나 가십거리 등등 온갖 자료를 찾아서 그것을 꿰매는 작업을 했었다. 그 성과가 1987년에 발간된 ‘백석시전집’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아직 납월재북 문학인에 대한 공식해금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전집을 발간했다. 이 책에 대한 당시 독자들과 언론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백석 시인은 자연스럽게 문학사의 복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확고한 위상을 차지했다. 

이런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필자는 최근 ‘나는 백석이다’란 제목의 평전을 발간했다. 표면적 형식이 평전일 뿐이지 실제로는 회고록 스타일을 채택했다. 1960년대 중반, 평양의 북조선문예총에서 철저히 고립되어 백두산 가까운 자강도 관평리 깊은 산골로 추방되기까지의 참담한 과정을 그렸다. 이와 더불어 추방 이후의 비통했던 심경과 적응과정을 시인의 육성화법을 빌어서 서술했다. 

이런 시도는 그동안 국내 그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전인미답의 분야이다. 평전의 구성과 방식은 이러한 변용(變容)으로도 가능한 것이다. ‘나는 홍범도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홍 장군이 극작가 태장춘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들려준 자신의 독립전쟁 활동기를 실감나게 다루었다. 구술로 엮은 이 내용은 극작가의 부인 리함덕이 자세히 옮기고 기록한 것이다. 참으로 현장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필자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 시기의 삶과 세태에 대하여 깊은 이해와 실감을 하게 되니 이것은 몹시 소중한 체험이 아닐 수 없었다. 온갖 굴곡과 시련으로 역사의 표면에서 안개처럼 사라진 인물을 다시 찾아내어 먼지를 털고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되새기는 일은 즐겁기 그지없다. 자라나는 후배세대들이 이런 평전기록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도 적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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