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16] 2020년 7월의 토요일 오후 2시
[중앙치매센터 치매극복 희망수기 16] 2020년 7월의 토요일 오후 2시
  • 중앙치매센터
  • 승인 2024.05.2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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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민다정] 10살 때였다. 친할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시고, 몸이 급격하게 안 좋아져서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할머니의 모습이 10년이나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같은 말을 자주 반복하셨고,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실 때도 있었으며, 가끔은 어린아이처럼 어린 나보다 더 투정을 부리셨다. 내가 알던 할머니가 아니었다.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할머니와 같이 공부를 하거나, 말동무가 제대로 되어드린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땐 그게 너무나도 후회가 되어, 성인이 된 후에 노인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진주시에서 개최하는 치매 지킴이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한 달 동안 할머니 약을 약 달력에 넣고, 할머니의 공부를 도와드리고, 말동무가 되는 것이 우리의 일이었다.

배우려는 열정이 강했던 유 할머니

7월 6일, 유○○ 할머니를 처음 뵈었다. 우릴 보고 해맑게 미소 지으시던 할머니의 인상이 너무 좋으셨다. 그날 처음 뵈었는데도, 할머니는 배우려는 열정이 강한 분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색칠을 유난히 잘하시고, 글도 금방 잘 익히시는 할머니는 자기가 어릴 적에 학교에 다녔다면, 분명 지금 뭐라도 하고 계셨을 거라고 얘기하셨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과거 자신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혼자 공부하는 건 재미없어서 못하겠는데,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와서 같이 공부하니, 공부할 맛이 난다며 자주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를 더 알아가고 싶고, 좋은 친구가 되어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매주 토요일 2시엔 할머니 댁에 방문했고, 안부를 묻고, 또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급격하게 친해졌다.

7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 할머니 생신이 일요일이어서, 우리는 할머니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드리기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할머니가 항상 운동하실 때 고무밴드가 필요한데,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물어보셨던 게 기억이 나, 할머니를 위한 예쁜 노란 고무밴드와 생일카드 그리고 이가 약하신 할머니를 위해 부드러운 케이크를 준비해서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할머니를 위한 우리만의 깜짝 파티여서 공부를 하던 중간에 할머니를 놀라게 해드렸다. 할머니가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때, 빠르게 케이크에 초를 꽂고, 할머니를 위해 준비한 거라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너무나 호탕하게 웃으시며 뭘 이런 걸 준비하느냐며 고마워하셨다. 할머니께서 그래도 올해는 내 생일 축하해주는 사람들이 찾아와줬다며 정말 고맙다고 몇 번이고 얘기하셨다.

할머니께 오늘이 저희가 마지막으로 오는 날이라고 그랬더니, 자기가 사실 글을 어느 정도는 아는데, 받침 같은 걸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며 그거 가르쳐주러 계속 오라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셨다. 

그리고 농담이라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어났으니까 더 많이 배우고 뭐든 해보고 갔으면 좋겠어. 정을 붙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을 붙이려고 하면 사람이 이렇게 떠나가니 어떻게 정을 붙일 수가 있겠느냐”며 호탕하게 웃으며 얘기하셨다. 

봉사하며 내 마음이 치유된 기분

그리고 웃는 얼굴로 다음에 우리 또 보자고 그러셨다. 군인이 되고 싶으셨던, 글공부를 더 하고 싶은 멋진 할머니를 만나 7월 한 달 동안 너무나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 2020년 7월의 토요일 오후 2시는 내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노인 복지에 관심이 많아 자그마한 단체에 기부하거나, 기사를 읽는 정도에 그치고 바쁘다는 핑계로 직접 봉사를 한 적이 그리 많지는 않다. 이번 기회를 통해 봉사활동을 해보니, 사회를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남을 보살피는 일이 이렇게나 뿌듯한 일인 줄 이제야 깊이 깨달았다. 하늘에 계신 할머니를 그리며 앞으로 노인분들, 특히 치매로부터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키는 봉사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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