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시대 금요칼럼] 봄날은 간다 / 오경아
[백세시대 금요칼럼] 봄날은 간다 / 오경아
  • 오경아 가든디자이너
  • 승인 2024.05.20 11:17
  • 호수 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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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아 가든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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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월 내내 화단을 가득 채웠던

봄꽃은 지고, 이제 여름꽃 준비 중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정원으로만 보면 일종의 환절기

지나간 봄날이 벌써 그리운 시기

5월이 시작되면서 밖에 세워둔 차 유리창에 누런 가루가 수북이 쌓였다. 송화가루다. 이 시기에 창문을 열어두면 온 집안까지, 덮고 자는 이불까지도 온통 누렇게 물이 든다. 대체 소나무는 얼마나 많은 꽃가루를 뿌려대길래 이렇게 많은 양이 공기 중에 떠돌아다니는 걸까. 

사실 소나무는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같이 피어난다. 다만 자가 수분을 막기 위해 수꽃, 암꽃이 그들 스스로 시간 차를 두고 피어난다. 우리가 송화라고 부르는 것은 수꽃이 다른 나무의 암꽃에 닿기 위해 바람에 날릴 수 있을 정도로 미세하게 만든 분말 형태의 수분을 말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골프에도 홀인원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다른 나무의 암꽃에 꽃가루가 정확하게 찾아야 하니 그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래서 소나무가 택한 방법은 어마어마한 양으로 물량 공세를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4월 말에서 5월 초는 황사 탓도 있지만 이 송화가루 탓에 노란 하늘빛이 생겨나기도 한다. 

영리한 우리 선조는 이 송화를 모아 물에 잘 씻어, 다식을 만드는 놀라운 일도 만들었다. 하지만 이 꽃가루가 날릴 즈음, 몸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다.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 중 하나가 바로 송화이기 때문이다. 

마을 뒷산에 울창한 소나무숲이 있는 내가 사는 곳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늘 허약한 내가 증상이 먼저 나타났는데, 올봄은 남편이 먼저 시작을 했다. 기침, 가래, 콧물, 코막힘, 몸살 등... 

남편의 뒤를 이어 곧바로 나도 시작이 돼 부부가 함께 며칠째 몸살을 앓는 중이다. 증상이 매우 비슷해서 감기와 혼동도 많이 일으키는데, 과학적으로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우리 면역 체계의 문제고, 감기와 독감은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 생긴 충돌이라 매우 다르다. 

사실 해마다 봄철 이 시기를 아무 일 없이 지나친 적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올해는 약을 먹어도 쉽게 낫지 않는 것이 역시 ‘나이 듦’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려고 해도 신체와 정신 모두 확실히 전과 다름을 느낀다. 

집안에서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할 판이지만, 이 좋은 날에 예쁘게 피어난 꽃을 보지 못하는 게 아쉬워 다시 정원 화단에 쪼그려 앉았다. 정말 하루가 다르게 찾아오는 화단의 변화가 신기할 정도다. 

3~4월 내내 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크로코스가 가득했던 화단은 이제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제는 여름꽃이 올라오는 중이다. 이제 흰색 꽃을 피운 하설초와 보라색 초롱꽃, 카마시아 그리고 월동에 성공한 라벤더도 꽃봉오리를 올리고 있다. 

여기에 가장 늦게 잎을 틔우지만 그 속도가 엄청난 고사리가 연초록 잎으로 거의 화단을 덮을 듯 커지고 있고, 진한 향기를 지닌 ‘딜’과 늦여름에 피는 ‘루드베키아’도 벌써 키가 무릎을 지나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중이다.

누구로부터 시작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5월은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건 날씨가 사람 살기에 좋고, 식물이 잘 성장한다는 의미일 것 같고, 정원의 아름다움 측면에서는 조금 다르다. 왜냐하면 정작 정원에서는 5월이 봄이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는 일종의 환절기이기 때문이다.

봄꽃은 이미 졌고, 이제 여름꽃은 꽃망울을 막 올리는 시기다. 물론 살고있는 곳의 기후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꽃이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다시 화려한 여름꽃이 선을 보이는, 잠시 색을 잃어버린 무성한 초록의 시간이다.

사실 모든 계절은 순환이니 봄이 가고, 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오기 마련인데도 우리의 마음에선 유난히 봄이 가버린 상황을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이유가 어쩌면 봄꽃이 사라지고, 아직은 여름꽃이 오지 못한 5월의 허전함 때문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그 마음을 대변하듯 우리의 가요 속에서도 여름, 가을, 겨울을 그리워하는 것보다는 지나가는 ‘봄’을 그리는 노래가 더 유명하다. 나의 어머니는 5월 꽃이 질 무렵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했다. 그 노래의 제목이 바로 ‘봄날은 간다’다. 

하지만 내 맘속의 또 다른 봄날은 간다는 ‘눈을 감으면 문득 그리운 날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거의 띠동갑을 두 번이나 두른 시간의 차가 있음에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이렇게 사랑을 받는 건 봄이 가고 있음을 아쉬워하는 우리의 마음 때문일 것이다.

쉽게 나아지지 않은 이 몸살이 꽃가루 알레르기 탓인지, 환절기 감기인지, 그도 아니면 이 가고 있는 봄날의 아쉬움 탓인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남아있는 수수꽃다리(라일락) 향이 이리저리 내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바람결에 맡아진다. 

나를 괴롭히는 꽃가루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꽃향기도 정원이 있으니 가능한 셈이다. 붙잡고 싶은 봄이지만 다가오는 여름에도 건강하게 이 정원에 앉아 바람, 햇살, 비를 맞으며 가족들과 나와 나를 아는 모든 이들이 건강하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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