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춘 56회
회춘 56회
  • 함문식 기자
  • 승인 2009.11.24 11:21
  • 호수 19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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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네, 지갑이 안보이네. 내가 너무 취해서 어디다 흘렸나? 아이 참.”
“어디 있겠죠. 제다 좀 이따 찾아볼게요. 따님 사진은 다음에 만나서 보여주셔도 되고요.”
“그럴까, 그런데 다음에 우리 딸 사진 보여주려면 한번 더 만나야겠네, 그러지 말고 저쪽 다른가게 직접 한번 보여줄게. 우리 가게 한번 놀러 와….”

권대홍은 자기가 말하고도 흠칫 놀랐다. 조금 전 까지만 해도 어색하던 관계였는데 이제는 자연스럽게 누님이라 부르고 다음에 또 보자니, 이게 이 여인의 매력인가.
아무튼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그렇고 벌써부터 따님 결혼 걱정 하는 건 너무 이른 거 아닌가요?
이제 겨우 스물 하난데….”

“아직 이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도 20대 초반에 걔를 낳았고, 또 애가 아빠없이 커서 외로움을 느끼는 걸 보니깐…. 제 딴엔 씩씩한 척 하지만 왜 안 힘들겠어? 그래서 본인만 좋다면 나도 일찍 시집 보내고 싶어.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지금 우리 상황이 이러니까. 아무튼 몇 년 더 바짝 벌어서 우리 영선이 시집만 보내고 나면 난 가게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거야. 어디 돈 되는 정보 있으면 나도 좀 가르쳐 줘 봐. 내가 딴건 못해주겠고 양주는 무제한으로 쏠게, 호호.”

백장미가 말하는 지금 우리 상황이란게 어떤건지, 새로운 삶이 무언지 권대홍은 궁금해졌다.
“음…. 그럼 몇가지만 여쭈어 봐도 될까요? 누님이 생각하시는 새로운 삶이란게 어떤 건가요? 혹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글세, 딱히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은 없는데…. 빚 다갚고, 가게 정리하고 영선이 시집보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 고향에 내려가서 작은 식당이나 한번 해볼까…. 아니면 꽃가게도 좋을 것 같고. 그런데 이 장사 외에는 해 본 경험이 없어서 한편으로는 겁도 나고, 잘 안되면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또 물장사 밖에 할게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꽤 큰 업소를 또 운영하신다고 들었는데, 두 군데나 영업을 하면 돈도 무지 많이 버실 것 같은데요?”
권대홍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니야, 우리가 가게도 화려하게 꾸며놓고, 옷도 좋은 거 입고 해도 다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야. 실속이 없어…. 그리고 벌린다고 그게 어디 다 내 돈인가…. 돈 버는 사람은 따로 있지. 아 괴롭다. 나, 이제 얘기 그만할래.”

그러면서 백장미는 또 맥주 한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권대홍은 이런 백장미의 모습을 보자 가슴 한 편이 짠해졌다.
조용하지만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명품거리인 도산공원 인근의 고급업소. 돈 푼깨나 있다는 회장님들, 고위공무원, 정치인, 전문직 등 주로 상류층들만 상대한다는 이 여인에게는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하긴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어린 딸을 키우면서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상대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또 그 와중에 이런저런 일들로 금전적 피해도 많이 봤을 테고.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을지 짐작이 간다. 마치 어느유행가 처럼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라는 가사가 백장미에게 딱 맞을 듯 싶다.

대홍은 이 여인의 삶에 희망을 줘야 겠다고 결심했다. 상대의 이 연상의 여인이 바라는 건 젊은 남성의 뜨거운 육체겠지만…. 권대홍은 결코 그렇게 타락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많은 은행, 보험, 증권사 등 다양한 금융회사들에서 고객들의 자산들을 관리하는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다. 주식, 채권, 펀드 등 금융상품을 전문적으로 굴리는 이들도 있고, 부동산이나 세금, 법률 문제에 해박한 전문가들도 있다.

대홍은 그중에서도 외국계보험사 출신이다.
20대 중반부터 보험세일즈맨으로 맨땅에서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다. 재벌, 정치인, 고위공무원 등 우리나라의 상위1%에 해당하는 VIP부터 영세시장상인, 신용불량자, 저소득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인생의 의미를 온 몸으로 배워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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