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인.생.수.업
[현장칼럼] 인.생.수.업
  • 관리자
  • 승인 2009.12.14 10:22
  • 호수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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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주 로하스두울노인클리닉 간호부장
“어르신들 모시면서 이런 일 하시는 거 무척 힘드시겠어요.”

70~100세 가까이 되신 어르신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는 노인전문 클리닉에서 일하면서 많이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다.

그러나 간호사 생활 20년이 지나 새롭게 접하게 된 노인전문병원에서의 생활은 내게 또 다른 인생수업의 한 장이다.

얼마 전 80세 노부부가 함께 입원을 하셨다. 뇌졸중으로 편마비가 있으신 부인을, 남편이 손수 돌보시면서 많은 시간 여러 병원을 다니셨다고 했다. 남편은 부인의 간병에 있어서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강박적 사고를 갖고 계셨다.

그러나 이곳 생활을 통해 어르신은 당신이 아니어도 되는 게 있다는 작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했다. 부인의 수발에서 벗어나 음악을 들으며 여유롭게 혼자 거실에서 신문을 보는 어르신의 모습을 보면서 삶을 즐기고 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게 작은 충격이었다.

위암 수술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퇴원 하자마자 입원한 한 어머님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평소 건강하게 지내셨기에 암이라는 진단은 당신과 가족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항암치료로 머리는 숭숭 빠져 있었고, 식사는 잘 못하는 상황에다 의지만 앞서 무리하게 운동하려는 모습 등은 전문가의 관리를 요구했다. 특히 정신적 상담치료가 급선무였다.

입원 생활을 통해 식사에서 물리치료, 운동, 투약, 웃음치료, 복지 프로그램 참여, 정신과 전문의의 상담 치료 등을 통해 적절하게 자신의 마음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서 건강을 회복했다. 또 대학병원에 다시 갔을 때 상태가 너무 좋아졌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기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어느 가족이라도 갈등은 있겠지만 임종을 앞둔 한 아버님의 시간은 참 길었다. 무엇이 이 생에서 힘겹게 붙잡고 있는 것이었을까? 아들 며느리의 극진한 사랑 속에서도 아버님은 가족에 등 돌린 딸을 끝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 딸의 간호를 하루라도 더 받고 아버님은 이 생에서 할 일을 다 이루신 듯 편안한 모습으로 손을 펴셨다. 아버님은 당신의 일을 이루셨던 것이다.

탄생과 죽음의 두 점 사이에 우리 인생이 있다. 모두가 나이를 먹고 언젠가는 이 생을 마감할 날이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지만 정작 그 삶 속에서 너무 많은 일들을 우리는 미루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렇다. 어르신들을 모시면서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난 오늘도 이 일을 하면서 인생수업을 톡톡히 받고 있다. 그리고 어르신들에게 배운 기도를 올린다. “신이시여, 제게 바꿀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는 평화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를, 그리고 그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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