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 생명의 시간성을 극복하려면
[금요칼럼] 생명의 시간성을 극복하려면
  • 관리자
  • 승인 2009.12.19 15:06
  • 호수 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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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주어진 공간 내에서 체성화된 생명체는 시간성을 확보함으로써 탄생하고 생물로서 현실화된 존재이다. 이와 같이 생명체는 불가분 시간의 굴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그리워하고 어울리고 그리고 헤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분자들의 만남에서도 시간성은 엄청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필요한 만큼의 반응만 초래하고, 만남은 끝을 맺어야 한다. 생체분자의 본연의 의무인 기능을 발휘함에 있어서 이러한 시간성은 바로 생명현상 그 자체이다.

분자들의 만남은 바로 활성을 나타내고, 이들의 헤어짐은 바로 활성의 중단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생체분자들의 만남과 헤어짐은 생명현상을 이끌어 나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생명체는 일정한 시간적 한계 내에서 살아가며 주위와 관계를 맺어 가는 하나의 존재이다. 생명체의 시간성을 결정하는 데는 생체분자들 간의 상호작용 관계가 중요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생체분자들의 상호작용이란 생체활성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자체에는 반드시 시간개념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시간개념의 근본에는 만나고 헤어지는, 채워지고 비워지는, 없어지고 자라가는 원리가 배어있다. 따라서 존재로서 생명체는 환경과 마주쳐서 맺고 풀어가야 할 관계가 있으며, 이러한 관계로부터 삶이 배출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체분자들의 반응은 작용을 마치고 나면 결국 서로 떨어짐으로써 반응을 종결시키고 다음 생명현상이 일어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생명현상에서 생체분자들은 이와 같이 일정한 반응을 마치면 서로 헤어져야 하며, 이러한 헤어짐의 원리는 생체분자 뿐만 아니라 세포, 나아가서 생체 개체의 수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 같다.

세포의 수준에서 볼 때도, 생명체 전체로서의 발생, 성장, 분화의 과정에서 요구되면 특정부위의 세포는 조용하게 이웃에 요란을 떨지 않고 사라져 줘야 한다.

사람살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주치고 어울리다가 헤어져야 하는 일들의 연속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좋아한 사람, 싫어한 사람, 그냥 마주친 사람 등 상관없이 우리는 만났다가 헤어져야 한다. 그것은 만남이라는 의미에 시간성이 깃들어 있고, 그 시간성은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의 원리에 덧붙여 생명에는 헤어지는 것도 중요함을 새삼 깨닫는다. 아무리 좋은 짝을 만났어도, 결국은 헤어짐으로써 공동선인 생명을 지켜야 하는 엄숙함을 배운다.

바로 이러한 헤어짐의 원리는 분자의 세계에서, 세포의 세계에서, 나아가서 사람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헤어짐의 주체는 누가 돼야 하는가? 누가 헤어지도록 강제할 수가 있는가? 그것은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나야 한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더라도 더 이상 쓸모가 없을 때, 삶이라는 공동선을 달성하는데 필요하다면, 반드시 떠나야 한다. 떠날 때는 조용히 말없이 떠나는 것이 생체분자의 세계이다.

그러나 다행한 것은 생체분자들과는 달리 개체인 인간은 헤어진 사람과 적어도 주어진 시간적 한계 내에서는 또 만날 수 있음을 행운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이러한 인간의 재회에는 단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정(情)이다. 사람살이의 가장 근원이 되는 본성-서로를 그리워하고, 어울리고 싶어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아니 그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다른 모든 물리적 현상을 극복하고,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생명의 시간적 한계의 서러움을 극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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