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34­­­
박재간, 대한노인회를 회고하다 34­­­
  • 관리자
  • 승인 2009.12.28 16:44
  • 호수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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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춘생 회장 시대의 개막

2000년 1월 초순, 필자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긴히 상의할 일이 있으니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를 롯데호텔에서 만났더니 “광복회 회장을 지낸 바 있는 안춘생 옹을 차기 회장으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안춘생 옹이 의사를 타진을 위해 보낸 사람임이 분명했다. 안춘생 옹을 직접 만났더니 “필자가 전적으로 선거운동에 앞장서 준다면, 그리고 당선된 후에도 상임부회장직을 맡아 도와준다면 출마해볼 의사가 있다”고 했다.

당시 그는 88세의 고령이었으나 건강에 이상은 없어보였고,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중국에서 조국광복을 위해 항일투쟁을 한 경력이 있었다. 이런 분이라면 300만 노인을 대표하는 회장이 돼도 무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령이 다소 많은 것이 흠이었으나 필자가 상임으로 그를 보좌하면 별문제가 없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당시 황인한 사무총장을 비롯해 몇몇 연합회장 등과 상의했더니 그들 역시 필자와 의견을 같이 했다. 이에 따라 회장선거는 백창현 회장이 3선에 성공하느냐, 안춘생 옹이 새롭게 회장으로 선출되느냐를 판가름하는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필자는 장기집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막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전국 산하조직을 순회하며 안춘생 옹에게 표를 몰아줄 것을 호소했다. 현 회장을 모셔야 할 입장인 사무처 직원들 모두 한결같이 필자의 선거운동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해 주었다. 직원들 역시 대한노인회를 위해서는 백창현 회장의 장기집권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방을 순회하며 대의원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지출된 식사대 등 500만원 내외의 선거비용이 들었는데 이것 역시 모두 필자의 호주머니를 털었다.

안춘생 옹은 자신이 직접 선거운동에 나서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필자가 지방순회 과정에 소요된 비용을 부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아 다소 불만스럽기는 했으나 3선의 관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

백창현 회장은 현직 회장이라는 이점과 풍부한 선거자금을 배경으로 대의원들 개개인에게 파고드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에 선거양상은 예측불허의 혼전상태가 계속됐다.

2000년 2월 22일 오전 10시, 남대문 근처에 있는 대한상공회의소 대강당에서는 새로운 회장을 선출하기 위한 정기총회가 개막됐다. 회의장 입구에서 백창현 후보와 안춘생 후보가 총회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을 맞아들였는데 대부분의 대의원들은 백창현 후보와만 반갑게 인사하고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안춘생 후보와 인사를 나누는 대의원은 20명 중 1명 꼴도 안됐다.

총회가 개막되자 백창현 후보를 지지하는 일부 임원들은 의도적으로 백창현 후보에게 유리한 발언을 쏟아내는 등 회의장에서 조차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에 열을 올렸다. 임시의장도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노골적으로 백창현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안춘생 옹을 옹립하려는 필자의 노력은 실패했다는 예감이 머리를 스쳐갔다.

그런데 투표결과는 안춘생 후보 155표, 백창현 후보 92표로 안춘생 옹이 대승을 거두는 결과를 나타냈다. 이로써 종신 회장을 노렸던 백창현 회장은 드디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총회를 치른 다음날 오전, 필자는 롯데호텔에서 안춘생 옹과 조찬을 같이했다. 앞으로 같이 일할 사람을 선발하는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필자가 상임부회장직을 맡는 데 대해서는 이의가 없었으나 사무총장을 비롯해서 노인회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임직원은 모두 자신이 광복회 회장 재임 당시의 직원들로 기용해야 되겠다고 했다.

필자는 광복회 사람들을 데려오는 것은 좋지만 사무총장 등 핵심 멤버는 노인사회를 잘 알고 있는 분을 배치해야한다는 점을 들어 그의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당시 황인한 사무총장은 안춘생 옹의 당선을 위해 동분서주했는데 그를 물러나게 한다는 것은 도의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필자가 상임부회장을 하지 않을 테니 황인한 사무총장만은 그대로 머물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 결국 옥신각신하다 그날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헤어졌다.

이 말을 전해들은 황인한 사무총장을 비롯한 사무처 직원들은 “안춘생 옹의 인간됨됨이를 다시 봐야겠다”는 등 험한 말까지 터져 나왔다. “우리가 전국을 누비며 득표공작을 해서 당선시켜 놨더니 이제 와서 그런 배은망덕한 소리가 어디 있느냐”며 모두가 분개했다.

그래서 수일간 혼돈상태가 계속 됐으나 결국 안춘생 옹은 자신의 주장을 거두고 필자를 상임부회장, 황인한 사무총장을 그대로 유임시키기로 결론을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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