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셀프가 아니다
효도는 셀프가 아니다
  • 관리자
  • 승인 2010.01.04 11:49
  • 호수 2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만율 부산노인대학협의회 공동회장
창밖엔 찬바람이 매섭다. 애지중지(愛之重之) 키운 자식들을 삶의 터로 떠나보낸 노부모의 마음은 허전하다 못해 외롭기 그지없다. 자식들이 바쁜 줄 알면서도 전화 한통이라도 기다려지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별일 없이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끝없는 어버이의 마음이다.

그런데 지금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효도(孝道)는 ‘셀프’(self)라는 의식(意識)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된다. 고령화로 인한 노인들의 삶의 문제를 자기들과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 부모가 욕먹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내가 욕먹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일부 젊은 층의 의식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변할 수 없는 것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문제는 노인들의 장수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의 효심(孝心)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노인문제를 노인들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 풀어가야 할 지혜와 의지가 필요하다. 정부와 사회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고,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효도를 기호에 따라 먹고 안 먹고 하는 커피나 음식처럼 병들고 나이 든 부모봉양을 셀프라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한심스럽다.

노인에게 물어볼 말이 없는 시대는 엉터리다. 노인을 지나쳐 버리는 시대도 엉터리다. 부모를 내다버리는 시대는 더욱 엉터리라고 한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기력 떨어지고 거동 불편한 늙은 부모, 기억력의 저하와 건망증이 심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어버이를 봉양하고 돌봐야 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道理)요, 의무(義務)이지 효도는 셀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편이 좋아지고 성공하면 효도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효도의 길은 멀어지며 부모와의 관계가 소원(疏遠)해진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정성껏 모시는 보살핌이 바로 부모에게 보답하는 효성이 아니겠는가. 부모는 자식이 입신출세하기 보다는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은 성실한 자식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자식들과 오순도순 부모 걱정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을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부모의 외로움과 질병을 무관심하게 넘기는 사이에 부모는 영영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만다.

돌아가신 뒤 불러 보고 울어 봐도 못 오시는 부모님,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살아생전 지성을 다해 모심이 효도이고 자식의 해야 할 당연(當然)한 도리(道理)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지 않은가.

인류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장차 한국이 인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효 사상 일 것이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지고 가야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 문화”라고 말했을 정도로 효는 우리나라와 동양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인 덕목(德目)이다.

그러나 만행의 근본인 우리의 효와 경로정신이 퇴색돼 가정과 사회적 도덕성은 물론 우리민족의 정신문화 퇴폐가 심히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에 살아도 부모님의 은혜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