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뜸사랑’ 회장
김남수 ‘뜸사랑’ 회장
  • 관리자
  • 승인 2006.09.02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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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의술 침뜸 사랑의 봉사로 서민건강 지킨다

침뜸. 특정 부위에 침을 놓거나 약재를 놓고 태워 김을 쏘여 질병을 치료하는 전통한방요법이다. 중·장년 세대들은 어린 시절, 침술원에서 침과 뜸으로 치료 받던 경험이 있다. 침과 뜸은 어려웠던 시절, 아픈 이들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했다. 그러나 침구사가 시술하는 침뜸은 지난 1962년 국민의료법에서 삭제돼 불법 의료행위로 규정됐고, 최근에는 그 명맥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게 됐다. 우리나라 전통의술인 침뜸의 효험을 입증해 명맥을 계승하고, 아픈 이들을 위해 진정한 인술을 펼치고 있는 김남수 ‘뜸사랑’ 회장을 만났다.

 

지난 1일 ‘2006 대한민국 대한명인전’이 열리고 있는 고양 한국국제전시장에서 김남수 회장을 만났다.

 

입구 오른쪽에 설치된 뜸사랑 부스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뜸사랑 봉사단에게 침뜸 치료를 받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긴 줄 앞에서 찾아오는 환자와 손님들을 밝은 얼굴로 일일이 반기고 있는 김남수 회장을 만날 수 있었다.

 

검버섯은 물론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고운 피부와 활기찬 모습에서 백수를 불과 8년 앞둔 어르신이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김남수 회장은 침구사였던 부친의 어깨 너머로 침술을 익히다가 침을 더 잘 놓고 싶어서 침구학을 배웠고, 일제시대인 1943년에 침구사 면허를 딴 후 60여년이 넘는 세월동안 침뜸을 놓아왔다.

 

스스로를 ‘침쟁이’라고 표현하는 그는, 평생 다른 일은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여긴다. 


김 회장은 “침과 뜸은 부작용이 없고 돈도 별로 들지 않아요. 한번 뜸을 뜨는데 드는 비용은 쑥값 몇십원 정도지요. 또 뜸자리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서민에게 가장 이로운 의술이기도 합니다”고 했다.


김 회장은 이어 선친에 관한 일화를 들려줬다. “생전의 선친은 아픈 사람이 있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침과 뜸으로 치료해 주었어요. 그런데 당시는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라 치료비를 내기 어려웠지요. 그래서 추수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각자 형편껏 쌀을 모아서 줬고, 그걸로 생활을 꾸렸습니다. 아름다운 의료보험이었죠. 저는 그게 진정한 의술이라고 생각해요. 의술은 돈벌이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선친의 가르침은 그의 평생 신조가 됐다.

 

침과 뜸은 부작용 없는 ‘종합의료기’


김 회장은 침뜸을 부작용 없는 ‘종합의료기’라고 부른다. 부러지거나 찢어진 외과적 상처 외에 몸 안의 질병은 어느 병이든 침뜸으로 다스릴 수 있다는 걸 임상을 통해 확신하며, 특히 디스크와 당뇨, 중풍에 탁월한 효능을 나타내고 있다고 강조한다.


김 회장은 침뜸에 대한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중국과 일본을 돌아다니며 침뜸을 비교해 보기도 했다. “중국 침은 아프고, 일본 침은 너무 약해요. 우리 것이 가장 효과가 좋지요. 사실 옛날에는 일부 부작용이 있었어요.

 

당시는 기술 부족으로 가는 침을 만들 수가 없어 대침을 썼는데, 대침은 잘못 찌르면 신경이 손상될 수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값싸고 질 좋으면서 머리카락 굵기만큼 가는 스테인레스 호침이 쓰이고, 쑥도 쌀알 반톨 만해서 부작용이 없습니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건강 비법에 대해서도 단연 뜸을 꼽는다. 김 회장은 지금도 아침 5시면 잠자리에서 일어나 밤 12시까지 강행군을 한다. 그가 운영하는 남수침술원에서 오전 6시부터 진료를 시작해 오후 5시에 진료를 마친 후, 뜸사랑 자원봉사자에 대한 교육과 후학 양성을 위한 책 만들기에도 주력한다.

 

뿐만 아니라 매주 월요일에는 국회와 감사원,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인근 창신동 금호빌딩에 있는 뜸사랑 봉사실에서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무료 침뜸 치료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바쁜 일정에도 김 회장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꼭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뜸을 놓는 일이다. 오전 9시가 되면 김 회장은 10분 정도 짬을 내 뜸을 놓는다. 이 시간은 어찌보면 그의 유일한 휴식시간이기도 하다. 평생 보양식은 물론 건강음료 하나 먹어본 적이 없는 김 회장에게 뜸은 유일한 건강유지 비법인 셈.


“요즘 장수시대라고 하지만, 생명이 붙어 있다고 해서 사는 게 아니에요. 아픈 곳 없이 즐겁게 살아야지. 뜸을 뜨면 건강하게 활동하면서 오래 살 수 있어요.” 김 회장의 건강철학이자 침뜸 예찬이 이어졌다. 이에 뜸사랑 조건원 사무처장은 “(김 회장과) 함께 다니다보면 젊은 봉사자들이 먼저 지치기 일쑤고, 봉사활동 차 외국에 나가서도 시차적응을 제일 잘한다”고 귀띔했다.

 

1962년 침구사법 폐지, 부활 위해 안해 본 일 없어 


김 회장은 우리의 전통의술인 침뜸의 맥을 계승하고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지난 1984년부터 가족들과 함께 무료시술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봉사활동이 이제는 전국 각지에 수십여 개의 ‘뜸사랑’ 무료진료실을 운영할 정도로 번성해 1000여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참여하는 봉사단체로 성장했다. 지난 20여년간 이곳에서 치료받은 사람들의 수가 무려 25만여명이 넘는다고.


뜸사랑은 ‘배워서 남 주자’는 슬로건으로 자원봉사자를 양성하고 있다. 뜸사랑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1년 동안 교육을 받는다.

 

초·중급 과정을 각각 3개월씩 교육받은 뒤 6개월의 고급 과정부터는 180시간의 자원봉사 시간이 정해져 있어 봉사를 위해 교육받는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교육 후에는 뜸사랑 연구원의 자체 시험을 거쳐 60% 정도만 뜸요법사 자격증을 받고 각 봉사실에서 정한 날짜에 봉사를 하게 된다.


침뜸의 계승과 봉사라는 좋은 취지로 시작한 일이지만, 최근 일부 한의사들이 이를 불법 행위로 신고하고 있어 김 회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는 “1960년대 주먹구구식 근대화 정책의 일환으로 서양의술이 장려되면서 우리 전통의술인 침뜸은 비과학적인 것으로 천시됐어요. 그러다 보니 침을 배우려는 사람도 차츰 사라져 침구학의 명맥이 끊어질 지경입니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의료행위였던 침뜸이 불법 의료행위가 된 것은 1962년부터다. 5·16으로 집권한 당시 정부가 국민의료법을 개정하면서 접골사, 침술사, 구술사 등과 관련된 조항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근거 규정이 사라지자 침구사는 순식간에 불법 시술자가 돼버렸다.


“침구사법을 다시 살리기 위해 안 가본 곳이 없어요. 장군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가장 막강할 것이라는 생각에 찾아다니며 침 놓고 뜸 떠주고 했습니다. 당시 장군들치고 저 모르는 사람 없을 겁니다. 멍석 깔고 지랄하는 것 빼곤 안 해본 일 없이 다 해봤지만 결국 이루지 못했습니다.”


사라진 침구사법을 떠올리며 격앙된 목소리로 목청을 높이는 김 회장. 그의 평생소원도 침구사에 관한 법이 부활되는 것이다. 그가 국회의사당이나 감사실, 과천 정부청사 등에 각각 설치된 봉사실에서 무료 시술하는 것도 침구사 관련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노력 중 하나다.

 

정책 입안자들을 대상으로 침뜸의 효능을 알려 당당한 의료행위라는 인식을 심어주겠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우리 침뜸은 세계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경쟁력 있는 의술입니다. 침뜸 관련법안 통과에 힘쓸 것이고, 장기적으로는 치료관광코스를 개발해 우리 침뜸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며 당찬 포부를 밝혔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김남수 회장은…


·1915년 전남 광산군 하남면 출생
·부친으로부터 한학과 침뜸의학 사사
·1943년 남수침술원 개원
·서울 맹학교 교과서 제정·심의의원,
·북경침구골상대학 객좌교수, 세계침구
·학회 연합회 침구의사고시위원·교육
·위원 등 역임
·현 뜸사랑 회장, 정통침뜸교육원장, 효
·행봉사단 회장, 남수침술원 원장
·‘나는 침과 뜸으로 승부한다’ ‘침사랑
·뜸사랑 아내사랑’ 등 16편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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