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아픔 고아 사랑으로 승화
삶의 아픔 고아 사랑으로 승화
  • 박영선 기자
  • 승인 2006.09.02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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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자 할머니 장학금 5000만원 기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정부에서 지원받은 생활비를 모아 고아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내놓아 감동을 주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공동체인 경기도 광주에 소재한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김군자(81세·사진) 할머니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00년 8월에 기부단체인 ‘아름다운재단’에 5000만원을 기부한데 이어, 지난달 31일 같은 재단에 또 5000만원을 기부금으로 내 놓았다.


이 기부금은 할머니가 정부로부터 받은 월 85만원의 생활안정자금을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옷 모두 마다하고 정성들여 모은 돈이다.


김 할머니는 “큰일도 아닌데 세상에 알려진 것이 부끄럽기만 하다”며 “고아로 자라면서 못 배운 게 평생의 한이 됐어. 나 같이 부모가 없어서, 또 돈이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삶은 기구함 그 자체다. 강원도 평창이 고향인 김 할머니는 10살,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각각 부친과 모친을 여의고, 17살 때 일본군에 끌려가 중국에서 20살까지 혹독한 위안부 생활을 겪었다.

 

광복과 함께 귀국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겪고 또 삶의 희망으로 여겼던 딸까지 잃게 되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지난 1998년 아는 이의 소개를 통해 현재 ‘나눔의 집’에 정착하게 됐다.


김 할머니는 이야기 도중에 아픈 지난 삶이 떠오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며 “그 이야기는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할머니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와 질문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 그 순간 방안 벽면 가득 붙어 있는 학생들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얼른 학생들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학생들 이야기가 나오자 김 할머니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김 할머니는 “기부금으로 혜택을 받은 아이들이 종종 찾아와서 방 청소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주고 하는데, 남자애들은 무뚝뚝해서 별로 재미가 없어”라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할머니처럼 남을 돕겠다”고 말하는 학생들을 볼 때 기운이 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최근 심한 관절염 등 노환이 오면서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 부은 손과 발이 할머니의 건강 상태를 짐작케 했다. 기자가 안타까운 마음에 손과 발을 매만지자, 손을 맞잡으며 “(나는) 이미 살만큼 살았어. 괜찮아… 괜찮아”라고 했다.


“다음 생애는 어떻게 태어나 살고 싶으세요?”라는 기자의 물음에, 김 할머니는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했다. 그만큼 삶에 대한 아픔과 원망이 많은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나는 이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정신이 또렷할 때 내가 가진 것을 정리하고 싶어”라고 힘겹게 말했다.


자신에게 아픔만을 준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사랑으로 승화시킨 김 할머니. 처음 만났을 때 어둡다고만 느껴졌던 김 할머니의 얼굴이 누구보다도 밝게 빛났다.


 박영선 기자 dreamsun@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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