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동의) 노인이 봉 인가?
(긴급동의) 노인이 봉 인가?
  • super
  • 승인 2006.08.1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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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상술 수난 강건너 불구경

복지 제도가 발달한 선진국에서는 노인이 되어 연금을 받기 시작하면 국가 공무원으로 취직했다고 농담을 주고받는다는 얘기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돈을 받아도 서구 선진국의 노인들은 부족한 것이 하나 더 있다. 가족애다. <관련기사 6면>


스웨덴에서는 노인단체가 노인연금을 너무 많이 받지 않겠다고 시위를 한 적이 있다. 연금이 너무 많아서 자식들이 부모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복지제도가 발달한 호주나 캐나다 같은 곳에 사는 한인 교포 노인들도 그 점이 가장 큰 고생이라고 한다. 한국 전통의 노인공경,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생각하면 우울증이 생길 정도라는 것.


그러나 한국의 미풍양속도 옛말이 되고 있다. 여전히 노인 공경과 부모와 자식간의 끈끈한 정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유별나지만,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은 다른 나라 못지않게 강퍅해졌다. 노인들이 악덕 상술에 수난을 당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특히 같은 경제수준의 국가들에 비해 인륜이 땅에 떨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소비자 보호원에 따르면 온천관광, 무료식사, 무료 공연 등으로 노인들을 유인해 노인 건강식품이나 건강보조기구 등을 판매하는 기만상술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보호원에 들어오는 60세 이상 노인들의 피해상담 수천 건 중 악덕상술에 의한 상담이 해마다 수백 건에 이르고 있다. 2004년 전국통계는 4995건 중 악덕상술이 276건에 달했다.


2005년 후반기 소비자 보호원에 접수된 계약 해지, 및 해제 상담 내용을 보면 몸에 좋다는 장뇌삼 관련 제품, 전립선에 좋다는 건강식품 등 건강식품을 비롯하여 수십만 원에 이르는 고가품이 많았다.


소비자 방문판매 피해사례도 2000년 16건, 2001년 20건, 2003년 137건, 2004년 91건, 2005년 75건에 이르고 있어 피해를 당하고도 밝히지 않은 대다수 사례까지 감안하면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노인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해외 효도관광을 하면서 노인 자신이 아닌 자식이나 며느리(사위)를 위해 물품을 구매하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다.


노인을 공경하는 미풍양속이 쇠퇴하는 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노인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노인이 봉인가? 이러한 탄식이 노인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노인들이 악덕 상술에 휘둘리는 것은 노인들 방식의 사회와 후손에 대한 믿음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꼴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당장 노인들이 노인 전문 의약품이나 건강식품, 의료기구, 건강보조기구 등의 이용을 중단할 수도 없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것처럼 노인들의 일상에서 필수불가결한 용품도 부지기수다. 적어도 노인의 건강과 생활에 필요한 용품만은 정직하게 소비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최근 소비자보호원은 노인소비자 피해사례를 바탕으로 ‘노인용품 이용 활성화 및 소비자피해 예방대책’을 정책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인용품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의 제고, 노인용품 상설 전시장 설치, 판매점 전문화, 업계의 자율 규제의 장려 등의 방법으로 고령 사회 노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자본주의가 우리 나라보다 발달한 선진국에서도 넘지 않아야 할 선은 지킨다. 현명한 소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노인들도 주의해야 하겠지만, 사회적인 장치와 의식이 바뀌어야 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이 오늘날 세계 10대 교역국에 말석이나마 이름을 올린 것은 기성세대, 특히 노인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연금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우리 노인들에게 피해를 주는 악덕업자들의 발본색원에 뜻을 모아야 할 때다.


박병로 기자 ropark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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