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리더] “카페모카 한잔 하실래요?”
[시니어리더] “카페모카 한잔 하실래요?”
  • 김용환 기자
  • 승인 2010.07.16 11:32
  • 호수 2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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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찬숙(64), 가정주부에서 ‘바리스타’ 변신 성공
63세에 첫 직장, 두려운 도전… 제2의 인생 찾아

서울 종로구 경운동 ‘삼가연정’(三嘉連亭). ‘책, 차, 사람의 만남으로 아름다워 지는 곳’이란 뜻의 이 카페는 지난해 8월 시니어를 대상으로 첫 선을 보인 북카페다. 이곳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안찬숙(64)씨는 생애 첫 직장을 선사받았다. 바리스타란 즉석에서 커피를 전문적으로 만들어 주는 사람을 말한다.

삼가연정은 카페 이름 그대로 벽면 가득한 책과 잔잔한 클래식 음악, 그리고 젊은이와 어르신들이 함께 어울려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다운 미소와 함께 “어세오세요” 인사하는 안찬숙씨. 그는 “삼가연정은 제2의 인생을 찾아준 곳”이라며 “다양한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커피를 대접하는 일은 무척 신나고 즐거운 일”이라고 말했다.

평생 가정주부로서 사회생활 경험이 없던 안씨에게 삼가연정은 직장 이상의 애정이 담긴 곳이다. 그는 지난해 8월에 문 연 삼가연정의 창립멤버. 무엇보다 삼가연정은 그의 첫 직장이기도 하다.

안씨는 “삼가연정은 내 몸의 일부와 같아요. 내 삶에서 가진 것들을 하나씩 버려야 한다면 가장 마지막이 가족일 것이고, 그 전이 삼가연정”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이곳에선 다른 카페에서는 볼 수 없는 ‘양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안씨가 초창기 메뉴 개발 때 제안했는데, 최고 인기 메뉴가 됐단다. 베테랑답게 직접 손으로 만든 인기메뉴라며 전(全)두부와 호박 케이크 자랑도 잊지 않는다.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안씨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배려한 근무 시간 덕분에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12명의 어르신들이 2개 팀으로 나눠 하루 6시간, 매주 20시간씩 바리스타와 손님접대, 계산 업무를 돌아가며 맡고 있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어려움도 있었다. 커피문화에 익숙지 않은 데다 대부분의 커피 이름이 영어였기 때문. 2개월 동안 카페운영과 바리스타 과정, 서비스교육을 받으면서 여러 번 포기할까 고민도 했다. 하지만 커피 제조가 익숙해진 지금, 그에게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일은 ‘식은 죽 먹기’다.

그는 “에스프레소와 같이 처음 듣는 생소한 이름들을 무작정 외우거나, 첨가물의 종류와 순서를 벽에 붙여가며 암기했던 기억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해 준 기분 좋은 추억”이라고 말했다. 가장 자신 있다는 ‘카페모카’ 한잔을 내어온다.

‘휘핑크림’을 올리고 ‘시럽’을 뿌려 장식하는 모습이 제법 프로다운 모습이다.

사실 안씨가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며 카페 일을 시작하겠다고 말을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냉랭했다. “평생 가정주부만 하던 사람이 뭘 할 수 있겠냐”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나서 사정은 달라졌다. 남편과 딸, 손자손녀까지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일을 시작한 뒤 얼굴도 더 좋아지고 건강도 좋아졌다”며 “분주한 일반 카페보다 여유로운 분위기에서, 비슷한 또래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하는 안씨의 미소는 부드러운 카페모카를 닮아 있었다.

안씨에게는 못 다 이룬 꿈이 한 가지 있다. 춘천과 같은 공기 좋은 도시외곽에 분위기 있고, 조용한 카페를 운영하는 것. 시간 날 때마다 한적한 곳을 찾아 자신만의 카페를 상상해본다는 안씨. 이미 ‘향기 있는 노을’이란 카페 이름까지도 지어놓았다.

물론 카페를 운영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너무나 많다. 하지만 꿈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안씨의 모습에서 커피만큼이나 진한 열정이 묻어난다. 그가 내리는 커피에는 인생의 깊은 향도 함께 묻어나지 않을까.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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