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희극인’ 백남봉, 그의 삶을 기억한다
‘시대의 희극인’ 백남봉, 그의 삶을 기억한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08.04 16:49
  • 호수 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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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맨쇼 달인 타계…전쟁세대 구두닦이가 코미디 전성기 이끌어
한국 코미디계에 한 획을 그은 원로 개그맨 백남봉(71·본명 박두식)씨가 병마와의 힘겨운 사투 끝에 지난 7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남보원과 함께 원맨쇼의 달인으로 평가받으며 70년대 한국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고인의 삶을 되짚어 본다.

1939년생인 고인은 1967년에 ‘물랑루즈 쇼단’으로 희극인 활동을 시작해 1969년에 동양방송 라디오 ‘장기자랑’이란 프로를 통해 방송에 데뷔했다. 국민들에게 웃음을 선물했던 그였지만 자신의 유년시절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과 피난을 경험했던 고인은 한 때 고아원에서 생활을 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전국 장터를 떠돌며 구두닦이와 장돌뱅이 등의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특기인 성대모사와 팔도 사투리는 어린 시절 전국 장터를 떠돌며 익혔던 그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결국 그것이 ‘백남봉식 원맨쇼’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석양의 무법자’ 휘파람 소리와 각종 동물 울음소리, 뱃고동 소리, 총소리, 말 달리는 소리 등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개발해 낸 삶의 흔적들이었다.

그는 코미디분야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70년에 편거영 감독의 ‘팔도 가시나이’와 ‘예비군 팔도 사나이’ 등의 영화에도 출연했고, 병세가 악화되기 전까지 KBS 1TV ‘전국일주’와 SBS ‘출발 모닝와이드’ 등에도 보조출연자로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웃음에 대한 애착을 보였던 고인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케이블 채널 실버 TV ‘백남봉쇼’와 KBS ‘언제나 청춘’을 진행하며 희극인으로서 감출 수 없는 열정과 끼를 발산했다. 지난 2000년에는 평생 희극인의 길을 걸었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인은 30년 넘게 피운 담배를 끊고 금연에 성공해 2004년 ‘만성 폐질환’ 홍보대사로 활약하는가 하면, 15년 넘게 산악자전거를 타며 MTB 마니아로 지내기도 했다. 또 조기 축구에서는 공격수로 뛸 만큼 건강미를 자랑하며 2007년 국민생활체육협의회 생활체육 홍보대사로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병마는 비껴가지 못했다.

지난 2009년 4월 늑막염 수술 도중 폐암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재활의지를 불태웠으나 최근 병세가 악화되면서 29일 오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31일 열린 영결식에 앞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화관문화훈장(5등급)을 추서함으로서 웃음을 주기위해 한 평생을 바쳤던 고인의 공적을 인정받았다.

누군가 원맨쇼를 보여 달라고 요청하기 전에, 먼저 마이크를 잡았던 고인을 우리는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긍지와 자부심으로 코미디언으로서의 삶을 즐겼던, ‘시대의 희극인’으로 말이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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