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대중 前대통령 ④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김대중 前대통령 ④
  • 관리자
  • 승인 2006.09.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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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인권존중 아시아적 가치 양립 ‘믿음직하게 주장’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김대중’을 입력하여 검색하면 인물사전 바로 아래에 웹 사이트 ‘디제이로드’(djroad)를 볼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홈페이지가 아니라 ‘디제이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위한 끝없는 여정-그 길을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사이트다.

 

김 대통령을 기리는 사이버 공간인 셈이다. 이 사이트의 ‘dj평전’ 코너에 소개된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의 자서전 속의 김 대통령 관련 글 한 대목을 보자.


“대통령이 된 김 대중을 다시 만나면서, 나는 그가 바츨라프 하벨이나 넬슨 만델라에 필적할 만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98년 취임 직후 올브라이트에 ‘햇볕정책’ 계획 설명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2000년).

 

그들 또한 감옥에서 대통령직에 이르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길을 걸었다. 그들 모두 갇혀 있는 동안, 정치와 인생에 대한 특유의 철학을 발전시켰다.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이 아시아적 가치와 양립한다는 것을 김대중 보다 더 믿음직하게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공식적인 만남의 자리에서 일흔 두 살의 지도자는 북한에 대한 새로운 ‘햇볕 정책’ 계획을 설명했다.”


이것은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던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정책이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것.

 

그렇게 미국을 설득시키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2000년 6월, 김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

 

YS시절, 남북 정상회담 보름을 남겨두고 김일성 주석의 급작스런 사망으로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을 남북 양쪽의 ‘선수교체’가 있은 뒤 성사된 쾌거였다.


남북통일 위업 달성을 위한 획기적인 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이 만남이 의미 있지만, 그보다도 남북 정상이 손을 맞잡고 포옹하는 장면과 김 대통령을 환영하는 평양 시민들의 열화 같은 함성이 특히 의미있다.

 

우리 역사에서 두 번 다시 보기 어려운 기막힌 감동이었다. 7000만 겨레의 가슴을 그렇게 설레게 하고 평화통일 의식을 정착시킨 공로만으로도 김 대통령은 오늘을 향유하며 건강하게 장수할 자격이 있다.

 

“급변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러나 초석을 놓았다”

물론 이 정책에 대해 이른바 ‘퍼주기’라고 비관론자들은 들이대고 있다. 그 따뜻한 햇볕, 즉 지원금으로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은혜를 저버린 짓을 할 뿐만 아니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니 실패했다는 것이다.


햇볕 정책, 혹은 비관론자들의 말 대로 ‘대북 퍼주기’ 정책은 실패했는가. 아직은 그 여부를 가름하기 이르다.

 

현재도 진행 중이거니와, 실패로 간주하고 마무리하기에는 그동안의 투자가 너무 아깝다. 남북문제는 주식시장처럼 쉽게 끓고 식어서는 안 된다.


다만 햇볕정책과 같은 중요한 대북 정책들은 캐비닛에 넣어두고, 집권 세력들이 공유하며 고도화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생각은 든다.

 

50년 넘게 철천지원수처럼 적대한 북한을 변화시키려는 적극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아이디어라면 청와대 캐비닛에 비밀리에 보관, 전수됐어야 하지 않을까 해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광주정상회의(2006년).

 

국내적으로, 혹은 선거에서 과실로 거두기 위해 너무 조급했다는 주장도 나올 만하다. 그렇다고 그 효과를 충분히 거둔 것도 아니다.


국세를 쓰는 만큼 국민을 설득시켜야 하고 나라를 투명하게 운영해야 하는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햇볕정책이 비밀일 때 정적들로부터 얼마나 심각한 공격을 받았을지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온 국민이 ‘나그네 옷 벗기기 게임’에 동참한 셈이 됐다. 나그네격인 북한이 우리의 이런 입장을 모를 리 없고, 안 이상 심기가 편했을리 없다. 결국 남한(즉 김 대통령)의 의도대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뜻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통일이라는 커다란 밭에 농사를 짓는 농부 같은 모습이 아름답다. 2002년에 방문한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에게 김대중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게 빠르게 변할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초석을 놓았지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김대중 대통령이 감옥에 갇혀 있던 때를 보자. 평전 ‘김대중의 눈물’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1982년 12월 16일이었다. 밖은 영하 10도 안팎이었다.

 

그는 지난 봄부터 가꿔오던 한 포기 진달래를 화분에 옮겨 심어 감방 앞 복도에 놓아두었다. 그리고 잊지 않고 교도관에게 부탁했다.

 

“햇볕에 따라 옮겨주세요.”

 

김 대통령은 그러면서 “이 꽃은 위보다는 아래를 보고 피는 게 안쓰러워서 부탁하니 잘 보살펴주었으면 해요”라고 했다고 한다.

 

탄압 받은 것 용서·화해로 승화 건강 장수 요인으로


살벌한 감옥에서 꽃을 가꾸고 그 꽃을 교도관에게 맡기며 햇볕을 쬐어주라고 부탁하는 이 장면을 필자는 주목한다.

 

생명을 보살피는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다. 꽃이나 정원의 초목을 가꾸고 돌보는 것은 김 대통령의 프로필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취미.


1992년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 대통령은 1993년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영국 유학길에 오른다. 그해 ‘월간조선’ 10월호에 실린 김 대통령의 동교동 탐방 기사를 보자.

 

김 대통령의 처지가 안쓰러워서인지 인간적인 면모를 잘 그려내고 있다. 기자는 김 대통령의 손자들이 손님으로부터 받은 만원권 지폐를 들고 응접실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까지 묘사했다.


“꽃 가꾸기가 취미이자 건강관리 비결인 김 전 대표 집의 뜰과 정원은 소문 그대로였다. 10평쯤 되는 마당에는 감나무, 모과나무, 대추나무가 한 그루씩 심어져 있었다.

 

나무 가지마다 매달린, 아직은 푸른 빛의 열매들이 소담스러웠다. 나무 아래로는 꽃나무들이 키 순서대로 차곡차곡 심어져 마당을 삥둘러 정원을 이뤘다. 울긋불긋한 꽃들은 아름다움을 뽐냈다.

 

마당의 잔디는 한 군데도 병든 곳 없이 촘촘했다. ‘이렇게 섬세하고 심미적인 사람이 어떻게 거친 정치판에서 살아남았을까’하는 생각까지 났다.

 

마당 오른쪽 구석에 있는 대추나무 가지에는 100마리도 넘어 보이는 참새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참새들은 사람들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푸드득 푸드득 날아갔다가 금방 다시 모여들었다.

 

동교동의 참새들은 모두 이 집에 모여 사는 것처럼 보였다. 왜 참새들은 이 집에만 모여들까. 이유는 금방 드러났다.”


  월드컵공원 개장 기념식에서 고건 시장과 함께(2002년).

 

김대중 대통령이 새들에게 모이를 주며 돌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날 기자는 방문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나서 새 모이를 정원에 뿌리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한다.

 

새들은 그렇게 뿌린 모이를 먹기 위해 정원으로 찾아들고 있었던 것.


꽃과 새들이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들임에랴. 대통령 당선 뒤에 출현하는 ‘햇볕정책’과 어딘지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은 풍경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돌보는 이런 태도와 마음자세가 보기 좋다. 그것이 스트레스 많은 김 대통령 자신에게 정신적·육체적으로 무한한 만족감을 주었을 것이다.

 

머리가 희어지지 않고,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도 모르긴 해도 그것일 것 같다. 재임 중 사형수의 사형집행을 결재하지 않은 유일한 대통령이라는 점도 이쯤에서 생각해 볼 만하다.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죽음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김 대통령도 인간이었으니 분노했을 것이다. 호리병속의 거인처럼 그날이 오면 보복하고 싶은 충동이 왜 없었겠는가.

 

하지만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보다 더 큰 앙갚음은 없는 법이다. 재임 중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건립을 결정하고, 정적들을 보복하지 않고 특별히 불화를 겪지 않은 것은 결국 김 대통령의 업적이자 건강과 장수를 가져오게 하는 요인이 될 것 같다.

 

북한에는 햇볕정책을 취하고 안으로는 엄혹하다면 그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생명을 살려낸 만큼 건강하고 오래 살 수 있다면 그 또한 김 대중 대통령에게 해당할 것 같다. 건강하게 장수할 것을 믿는다.  

 

<끝>

※다음호부터 2회에 걸쳐 본 시리즈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 결산’ 편을 연속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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