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과 세대간 형평성
연금개혁과 세대간 형평성
  • 박영선
  • 승인 2006.09.29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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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0년대부터 고령화사회가 우리사회의 중요한 화두로 등장하면서 국민연금 개혁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다.

 

국민연금제도는 우리나라 근로자의 노후 소득보장을 위한 대표적 사회보장제도이다. 공무원, 군인 및 사립학교 교직원을 위한 연금제는 각각 별도로 있으나, 이 3가지 연금제도(특수직역연금제도라 함)가 대상으로 하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7% 정도에 불과하고 나머지 93%의 근로자는 국민연금 가입 대상자다.

 

이처럼 국민연금이 근로자의 90% 이상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연금개혁의 대표적 사례가 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적게 내고 많이 타가도록 설계되어 있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지난 1998년에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연금 수급액을 1차 낮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적게 내고 많이 타가는 문제는 크게 개선되지 못해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심각하게 인식되고 있는 고령화 문제는 국민연금제도의 지속성에 적신호를 주시하게 했다. 또 일찍부터 고령화를 경험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고령화 대책으로 연금개혁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는 사실에서 국민연금 개혁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더욱 부채질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정부에서는 연금 보험료는 더 높이고 연금액수는 더 낮추는 방향으로 국민연금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적게 내고 많이 타가도록 되어있는 국민연금제도의 구조는 가능하면 속히 개혁되어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적게 내고 많이 타가게 되면 연금재정이 속히 적자나고 고갈될 것은 뻔한 일이다. 국민연금제도가 현재대로 나가면 2036년부터 적자가 시작되어 2047년에는 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기금이 적자나거나 고갈되면 연금 보험료를 부담해야 할 후세대들이 보험료를 더 부담하거나 아니면 국가가 세금으로 연금기금의 적자 분을 보충해 줄 수밖에 없다.

 

연금 보험료를 더 많이 내는 것이나 국가 세금으로 메우는 것 모두 결국은 후세대들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선(先)세대는 적게 내고 많이 타가고, 후세대는 많이 내고 적게 타가는 결과가 되어 세대간 형평성이 어긋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연금제도는 낸 만큼 타가게 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적자와 고갈의 시기가 크게 미뤄질 수 있도록 시급히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세대간 형평성 논리를 사회적 관습이나 문화를 무시하고 적용하려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세대간의 형평성은 다시 말하면 공적으로 선(先)세대와 후세대간에 부담을 같게 하자는 것이다.

 

세대간의 형평성 논리가 연금개혁의 논리에 적용되는 서구사회는 상당히 오래 전부터 자녀의 경제적 독립정신을 강조해 온 사회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스스로 벌어 대학을 가거나 아니면 부모의 보증으로 대부받아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다니는 것이 일반적 관습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결혼비용(결혼식과 결혼생활 준비비용)도 자녀들 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서구사회에서의 부모 부담은 우리나라와 비교해서는 아주 가벼운 편이고 부모가 연금 외에 별도로 노후자금을 준비할 수도 있다. 이처럼 부모가 자녀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바탕을 마련해 주는 정도로만 자녀에 대해 지원하고 있는 서구사회에서는 세대간의 형평성 논리가 타당하게 적용될 수 있다.

 

2005년 한 결혼 주선업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결혼비용은 한 쌍 당 약 1억3000만원으로 신랑이 9000만원, 신부가 4000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결혼 비용 중 56%는 부모의 지원이라고 했다.

 

부모가 학업비용과 생활비용 그리고 결혼비용까지 엄청나게 부담하는 관습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모가 경제적 여유가 있어 자녀를 지원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도 관습에 얽매여 노후의 경제적 위험을 무릅쓰고 자녀를 지원하는 관행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이런 관행은 자녀의 발전이나 부모의 노후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따라서 오늘날의 부모들과 자녀들 모두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자녀의 의존적 생활을 속히 개선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평생 동안 자녀에게 사적으로 이전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공적으로만 세대간 형평성을 주장하며 연금액을 낮추는 것은 부모의 퇴직 후 경제적 여건을 악화시킬 것이 뻔하다. 그러므로 연금개혁이 아무리 공적차원이라 하더라도 사적차원의 관습을 고려해 세대간의 형평성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부모세대(선세대)가 자녀세대(후세대)에게 사적으로 과도하게 이전한 선세대의 부담은 무시하고 공적으로 후세대의 부담만 강조하며 부모세대의 연금을 깎으려는 것은 진정한 세대간 형평성이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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