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알았다면 오빠와 생이별 안했을 텐데…”
“글 알았다면 오빠와 생이별 안했을 텐데…”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08.27 12:08
  • 호수 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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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배운 恨 푼 양원주부학교 졸업생 이용례(73) 어르신
황해도 옹진군에서 태어난 이용례(73·사진) 어르신은 6·25 전쟁 때 이별한 오빠의 편지를 꺼내볼 때마다 가슴이 메어온다.

이 어르신은 1·4후퇴 때 오빠의 손에 이끌려 남쪽으로 향하는 배에 무작정 몸을 실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이름도 모르는 전라도의 작은 섬. 당시 15살이었던 그가 의지할 곳은 6살 터울의 오빠뿐이었다. 하지만 남매의 상황은 비참했다. 매 끼니조차 해결하기 힘들었다. 결국 오빠는 자원입대를 선택했다.

“옹례야, 오빠가 꼭 찾으러 올 테니까 멀리 가지 말고 기다려야 한다.”
▲ 이용례 어르신의 오빠의 편지.
그 때부터 15살 소녀는 매일 밖에 나와 오빠를 기다렸다. 얼마 후 그토록 기다리던 오빠로부터 편지가 왔다. 하지만 내용을 알 수도, 답장을 보낼 수도 없었다. 글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어르신은 “이웃의 도움으로 내용은 알 수 있었지만 답장은 결국 보낼 수 없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기다리면 오빠가 찾아올 줄 알았다”고 당시를 회상한다. 하지만 오빠와의 연락은 편지 한 통을 끝으로 끊어지고 말았다.

그가 고희(古稀)를 넘겨 글을 배워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다 이 때문이다. 그 때 한글만 알았더라면 오빠를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생각에 지금도 가슴이 북받쳐 오른다고.

여자는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졌던 시절. 이 어르신의 마음에는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 한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양원주부학교였다. 양원학교는 배움의 시기를 놓친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4년제 학력인정 학교다. 그는 18개월 만에 초등학교 과정을 수료하고, 지난 8월 25일 졸업식을 가졌다. 생애 첫 졸업식인 셈이다.

무엇보다 이젠 읽고 쓰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학교 수업시간에 오빠에게 직접 편지도 썼다. 답장을 작성하는 데 무려 60년이란 세월이 걸린 것이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 만큼 편지에는 어르신의 애절함과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혹시나 자신을 잊었을까봐 고향주소와 가족들의 이름까지도 상세히 나열돼 있었다.

‘용례가 용일(容一·79) 오빠에게 보내는 편지… 제 이름은 김용례입니다. 이용례로 성이 바뀐 건 부모 없이 혼인신고가 되지 않아 은인의 성을 따른 것입니다. (중략) 꼭 돌아오겠다는 오빠의 약속을 믿고 매일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기다리던 편지를 받았지만 한글을 몰라 답장을 못 했습니다. (중략) 절 잊으신 건 아니죠? 고향은 황해도 운진군 동남면 연평리 제피나무골이고 아버지 이름은 김익수입니다. 여동생들은 김숭례, 김정예, 김용심이고 막내 남동생은 김용희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꼭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60년 만에 답장을 썼지만 건네 줄 이가 없는 편지였다. 하지만 이 편지 한통은 오빠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한글을 배우기 위해 입학한 학교에서 꿈을 갖게 된 것이다. 그는 이제 더 큰 꿈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어르신은 “양원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마치면 신학대학교에 진학할 계획”이라며 “사회의 약자로서 병들고 외롭게 사는 이들을 위로하는 목사로서의 꿈을 이루고 싶다”고 말한다. 72세의 예비 중학생은 오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펜을 잡는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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