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한 (사)대한노인회 영등포구지회부설 새생활장수 노인대학은 활기찬 노년을 선도해나가는 교육의 터전으로 350여명의 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현재 여학생들로만 구성돼 있어 일명 ‘영등포여자노인대학’이라 불리고 있는 이 노인 대학은 여성들만의 친화력과 결속력으로 활기찬 공동체 생활을 펼쳐나가고 있다. 활기차고 당당하게 노년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을 만나봤다.
‘쿵덕쿵 쿵덕쿵’ 저 멀리서 장구 소리가 들린다. 장구소리를 따라 올라가보니 회색 3층 건물 앞에 커다란 글씨로 새생활장수 노인대학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다.
장구소리가 들리는 2층 계단을 올라서니 할머니 한분이 계단 청소를 하고 계셨다. “할머니, 학장님은 어디 계신가요?” “학장님? 1층 사무실에 계실텐데…” 라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며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 가신다.
노인대학 정문 오른편에 작은 쪽문이 딸려 있는 1층. 널찍한 방에서 몇몇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서 작은 서랍장을 뒤적이던 곽준섭 학장이 반갑게 기자를 맞으며 사무실로 안내했다.
5평 남짓한 사무실 안에는 학장이 쓰는 책상과 학생들이 사용하는 컴퓨터 10여 대가 한 줄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3명의 할머니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자판을 조심스럽게 누르고 있다. 서툴지만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니터에 새겨지는 것이 신기한지 다음 수업시간도 잊은 채 열심히다. 옆에 할머니가 “빨리 들어가야지 늦겠네…”라고 재촉을 하지 않았다면 아마 다음 수업에 늦었을지도 모른다.
여학생으로 구성된 노인대학=새생활장수 노인대학은 350여명의 여학들로 구성돼 일명 ‘영등포여자노인대학’이라고 불리고 있는 여성노인대학이다. 학생들이 모두 여학생들로 이뤄져 있어서 그런지 대학 안은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다.
남학생들이 없는 특별한 이유가 있느냐는 질문에 곽 학장은 “처음엔 남학생들이 몇 명 찾아왔지만 할머니들과 잘 융화하지 못해 며칠 나오다 말았다”며 “남학생을 받고 싶어도 할머니들이 워낙 많다보니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느 노인대학 못지않게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출석률도 뛰어 날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은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가족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그저 뿌듯하기만 하다고 한다.
노인대학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웃음소리에서부터 느껴졌다. ‘호호호’ ‘깔깔깔’ 만나는 사람들마다 서로 어루만져주고, 환하게 웃어주는 할머니들의 모습에서 이 노인대학이 얼마나 화목한 곳이지 실감케 했다.
이곳 노인대학을 찾는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그동안 자신의 인생보다 자식들 뒷바라지로 일생을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녀들에게 노인대학은 꼭 배움을 위해서만이 아닌 남은 인생을 보다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제2의 안식처와 같은 곳이다.
곽학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자식은 물론 손자들까지 다 키워 놓고 남은여생은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다보니 누구보다 열성적이며 활발하게 생활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같은 여성들이라는 것과 비슷한 또래, 비슷한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여서 서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다가가 좋은 관계를 이루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양한 수업과 강사진=그렇다면 여성들만이 다니는 노인대학은 다른 노인대학과 무엇이 다를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한문, 민요, 장구, 고전 무용, 가요, 댄스스포츠 등 12여 개의 수업을 배우고, 토요일엔 일반 수업대신 ‘특별강의’라고 해서 유명인을 초청해 강연회를 연다. 이렇게 일요일을 제외하곤 매일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학생들로 시끌벅적하다.
그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과목은 고전무용으로 다른 과목보다 훨씬 많은 인원들이 수강을 하고 있어 무려 3개의 반으로 나눠 구성돼 있다. 3반 모두 다른 강의실에서 다른 선생님께 다른 무용을 배운다.
그러다 보니 각 반 학생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이 존재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기자가 찾은 월요일 오전 시간엔 고전무용 1반과 2반 그리고 장구반이 수업을 하고 있었다.
우선 지하에서 수업이 한창인 고전무용 1반을 찾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선 강의 실에는 30여명의 학생들이 분홍색 저고리와 노란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고, 머리에는 분홍색 족두리를 두른 채 창부타령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곱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틀어 올린 학생들의 모습 어디에도 할머니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들썩거리는 어깨, 떨어질듯 말듯 한 손놀림,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은 마치 선녀들이 내려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노인대학의 자랑거리 고전무용반=열심히 무용을 하고 있는 학생들 너머로 유독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연보라색 무용복을 입고 학생들 앞에서 추임새를 넣고 있는 박진수(73) 강사였다. 가녀린 몸매와 작은 체구를 지녔지만 학생들 동작 하나하나도 세심하게 지적하는 모습에 일흔셋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박강사에게 주목할 만한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바로 그녀의 이력이다. 박강사는 본래 이 노인대학 학생으로 고전무용반 학생들을 이끌어 나갔던 반장이었다. 학생 때부터 프로 못지않은 실력과 열정을 인정받아 강사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또한 현재 고전무용 외에도 친교댄스, 에어로빅, 장구 무용 등 여러 가지 강의에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이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열심히 배우는 선생님과 학생들 덕에 고전문용반은 각종 대회에 참가해 상을 휩쓸었을 뿐 아니라 국내공연, 싱가포르, 중국, 일본, 태국 공연 등 외국에서도 수차례 공연을 펼쳐 노인대학의 자랑거리다.
같은 시간 2층에서는 장고에 맞춰 판소리 수업이 한창이다. 박판도(55)강사와 함께 20여명의 학생들이 배틀가를 부르며, 장구를 신명나게 치고 있었다. 어깨춤이 절로 났다. 이처럼 노인대학 건물 여기저기에서는 장구소리, 판소리, 타령, 트로트 소리 등 건물 안에는 시끌벅적 활기로 가득 차 있다.
곽준섭 학장은 “매일 이렇게 시끌벅적하게 산다. 그러나 한 번도 이런 소리가 듣기 싫은적이 없었다. 노년기에 활발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증거인 것 같아 오히려 뿌듯하다” 며 활기차게 사는 학생들의 모습만 보아도 젊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곽학장은 현재 학장으로서의 일만 아니라 직접 한자수업을 지도하고 있다. 매일 1교시마다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고 있는 곽학장은 “몸이 아파 쉬고 싶은 날도 있지만 학생들의 열정을 생각하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며 “교육은 노인들의 자질과 질적향상을 시키는 중요한 것”이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