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은 ‘떠오르는 태양’ 웰다잉은 ‘지는 석양’
웰빙은 ‘떠오르는 태양’ 웰다잉은 ‘지는 석양’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0.15 10:30
  • 호수 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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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죽음’ 주연배우 심상석(75) 어르신
무대에 불이 꺼진다. 객석을 가득 메운 300여명의 관객들도 숨을 죽인다. 조명이 켜지자 한 사내가 킥보드를 타고 요란스럽게 등장한다. 광대를 연상시키는 빨간 줄무늬 의상에, 우스꽝스런 모자가 시선을 끈다. 또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갖가지 익살스런 표정을 지어가며 35분간의 공연을 이끌어 가는 주연배우 심상석 어르신. 평생 연기라고는 배워 본 적 없는 그의 끼와 재능에 한번 놀라고, 올해 일흔 다섯이라는 그의 나이를 듣고 또 한 번 놀란다.

심 어르신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에서 지난해 창단한 웰다잉 연극단의 최고령 단원이다. 그런 그가 연극단 2번째 작품 ‘행복한 죽음’에서 당당히 주인공을 맡을 수 있었던 건 그의 부단한 노력과 열정 때문이다. 그의 대본에는 연출자 장두이 인덕대 교수의 가르침이 빼곡히 기록돼 있다. 희수(喜壽)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긴 대사를 외고, 동선을 익히고, 상대역과 호흡을 맞추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심 어르신은 “버스, 전철, 공원, 집, 길거리가 모두 내 연습장이자 공연장이었다”며 “책임감을 갖고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살고 있고, 가장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다”면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어 그는 “우리 인생을 여는 ‘웰빙의 문’이 있다면 닫는 ‘웰다잉의 문’이 있다. 행복이라는 문은 웰빙이나 웰다잉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보이거나 만져지지도 않는다. 다만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삶과 죽음이 두 개의 수레바퀴처럼 균형을 이루는 삶이 진정한 행복이라는 사실을 연극을 통해 깨닫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사실 그는 40년 넘게 교직생활에 몸 담았던 베테랑 강사다. 하지만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어르신들에게 웰다잉을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그는 어르신들이 감정이입을 통해 웰다잉을 느낄 수 있는 연극을 교육방법으로 선택한 것.

심 어르신은 웰빙이 ‘떠오르는 태양’이라면 웰다잉은 ‘지는 석양’에 비유한다. 그는 “눈부신 태양만 쫓다보면 노을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한다”며 “사람은 태어나면 모두 죽게 마련인데, 이를 애써 외면하면서 많은 사람이 유한한 삶을 낭비하고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일흔 다섯의 나이에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히려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힘들다는 걸 느낄 시간이 없을 정도로 해야 할 일들이 많다”고 너스레를 떤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말까지 공연 일정이 빼곡히 잡혀있었다. 또 기존에 해오던 노인교육지도사, 지역자치위원, 서인천고등학교 교육이사 등의 일도 병행해야 한다. 게다가 복지관과 경로당에서 웰빙 강연 및 웰다잉 세미나 등의 봉사활동까지.

하지만 그에겐 더 큰 목표가 있다. 웰다잉에 대한 교육을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 이를 위해 웰다잉 관련 책 출간을 목표로 틈틈이 글도 쓰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는 한국문인협회 회원으로 이미 수필집 6권을 쓴 전문 수필가이기도 했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photo@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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