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도 안되는 자식들, 기초생활수급권도 가로막아 두 번 불효
연락도 안되는 자식들, 기초생활수급권도 가로막아 두 번 불효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0.10.15 10:51
  • 호수 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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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이 발표한 ‘2010고령자통계’에 따르면 홀몸노인들은 경제적 궁핍을 가장 큰 어려움으로 꼽았는데, 4명 중 3명은 노후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아 자녀에게 의지하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10명 중 6명은 자신의 건강상태가 나쁘다고 인식할 정도로 건강에 대한 두려움도 컸다. 사회적 고립 상태도 심각해 홀몸노인 10명 중 2명만이 계, 동창회 등 단체활동에 참여, 외로움과 소외감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궁핍과 건강악화, 외로움에 시달리던 홀몸노인들이 우울증에 빠져 급기야 자살을 선택하거나 혼자 병을 앓다 숨지는 ‘고독사’도 급증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남의 일’이 아닌 ‘나의 문제’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65세 이상 노인이 홀로 사는 가구, 즉 홀몸노인은 102만1000명. 총 가구의 무려 6.0%에 해당한다. 그러나 20년 후인 2030년엔 그 비중이 11.8%로 늘어나 10가구 중 1가구가 홀몸노인이 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장한형 기자 janga@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photo@100ssd.co.kr

효의 달 기획특집
① 홀몸 어르신,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 ② 경제적 어려움·건강 악화 │ ③ 노인자살게이트키퍼·말벗도우미·노인공동체 그룹홈 등 대안 등장


‘2010고령자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홀몸노인 중 본인이 직접 생활비를 마련하는 비중은 33.6%에 그쳤고, 홀몸노인 대부분은 자녀 또는 친척(43.5%)이나 정부·사회단체(22.9%)의 지원에 의존해 생활했다.

서울 영등포쪽방촌에서 45년째 살고 있는 정만순(81) 어르신은 생계가 막막한 대표적인 홀몸노인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당뇨병을 비롯해 불면증, 우울증, 치매, 안질환 등 하루 7~8종의 약을 먹어야 한다. 한국전쟁 당시 아내를 잃고, 3명의 자녀들도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설상가상, 건설현장에서 사고로 목과 왼쪽다리를 크게 다쳐 5년 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그 후 빈 털털이로 쪽방촌에 들어와 생활한 지 벌써 반세기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에게 국가는 ‘참전수당’이란 명목으로 한 달 고작 9만원을 쥐어줄 뿐이다. 또 목과 다리의 장애로 한 달 3만원의 장애(4급)수당이 지급된다. 정부가 지원하는 월 12만원이 그가 기댈 수 있는 수입의 전부다.

황금자(가명·여·72) 어르신은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 기초생활수급 지원금으로 받는 38만7000원이 한 달 생활비다. 매달 집세 20만원을 뚝 떼어내고, 쌀과 라면, 반찬 몇 가지에 약을 사고 나면 고작 5만여원이 남는다. 이런저런 생활비를 대면 매달 적자를 면할 수 없다.

◇기초생활수급권, 가장 현실적 탈출구
홀몸노인들이 가장 현실적인 지원책으로 꼽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 황금자 어르신처럼 정부지원으로 매달 40만원에 가까운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빈한 생활을 하고 있는 홀몸노인이라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대부분 자녀들이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어 대상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노인돌봄기본서비스 발전방안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홀몸노인 중 현재 생존해 있는 자녀가 한명도 없는 경우는 23.5%에 불과했고, 1~2명인 경우가 18.6%, 3~4명인 경우 28.2%, 5명 이상인 경우도 29.8%나 됐다. 평균 생존 자녀수가 3.02명이었다. 대부분의 자녀가 부모님을 모시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자녀들 때문에 홀몸노인들이 기초생활수급자도 되지 못한다는 점은 더욱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서 혼자 사는 오옥임(83·여) 어르신은 요즘 2년여 전부터 연락이 끊긴 큰아들을 수소문 중이다. 기초생활수급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큰아들로부터 ‘금융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 큰아들이 부양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 어르신은 “큰아들이 사업실패 이후 종적을 감췄는데 이제 와서 이런 일로 찾는다는 게 가슴이 아프다”면서 “하지만 큰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으면 기초생활수급권을 받기 어렵다고 해 이리저리 찾고 있다”고 말했다.

끝내 큰아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아들을 ‘실종자’로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실종 신고 한 달 뒤부터는 수급권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 어르신은 멀쩡히 살아 있는 아들을 실종자로 신고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부양도 않는데 “자식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제외
자녀와 연락을 하고 지내도 ‘부양의무자 기준’은 더욱 까다롭다.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가구의 소득인정액(소득평가액+재산의 소득환산액)이 최저생계비 이하면 수급자로 선정될 수 있는데,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있다 해도 부양능력이 없어야 한다.

부양의무자는 1촌(아들, 딸)의 직계가족(부모, 자녀) 및 그 배우자(사위, 며느리)로, 부양의무자의 소득인정액이 부양의무자 및 수급권자의 최저생계비 합의 130% 이상이면 부양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급권이 주어지지 않는다.

즉, 4인 가족인 부양의무자의 경우, 자동차가 없고 부동산이나 금융재산 등이 5400만원 이하(대도시)일 때 소득이 월 243만원 이상이면 부양의무가 있다고 판단된다.
자동차가 있거나 부동산이나 금융재산의 합이 5400만원을 넘으면 소득이 더 적더라도 부양의무가 있다고 여겨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본인이나 부양의무자가 생계형으로 트럭을 갖고 있거나 다세대주택 한 채만 있어도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되는데 걸림돌로 작용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이태진 기초보장연구실장은 “지금의 부양의무자 기준은 너무 박해 주변의 가족들까지도 빈곤층으로 내몰 수 있다”면서 “현재 최저생계비의 130%로 돼 있는 부양능력 판단 기준을 더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최후는 ‘부양회피’ 증명…“나 살자고 인연 끊나”포기
부양의무 판단기준이 이처럼 까다롭다보니 법적으로는 자식들의 부양의무가 인정된다고 결론이 났지만 실제로는 생활이 어려워 부양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홀몸노인들은 실제로는 기초생활수급을 받는 노인들보다 훨씬 열악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정부로부터 이렇다 할 지원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이처럼 ‘부양능력이 있는 자식이 있지만 지원을 못 받는 경우’에도 수급자로 선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기는 했다.

일선 시군구는 한 분기에 한 번씩 심의위원회를 열어 ‘부양의무자가 부양을 거부ㆍ회피하는 경우’를 판단, 수급권을 주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통해 수급권이 주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자식들이 ‘부양 거부’를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해야 원만하게 심의가 통과되는데 우리 정서상 부모와 자식이 이런 서류를 요청하고 내주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자식들로부터 ‘부양하지 않겠다’는 명확한 증빙서류를 받지 않는 한 수급권을 주기 어렵다”면서 “사정이 딱하다고 명확한 근거자료 없이 수급자로 선정했다가는 감사에서 걸리기 딱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난→건강악화→고독사 ‘악순환’
홀몸노인들의 또 다른 고민은 건강이다. 경제적 궁핍이 홀몸노인들을 의료사각지대로 내몰기 때문에 질병에 걸릴 경우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쓸쓸히 병을 앓다 ‘고독사’(孤獨死)를 당하는 노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전국 60세 이상 노인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2008년 노인실태조사’에 따르면 홀몸노인의 질병 보유율은 88.3%로 전체 노인 평균 82.2%보다 높았다.

의사가 진단한 질병 수에 있어서도 배우자와 사는 노인은 1.8개, 자녀와 사는 노인은 1.9개였지만 홀몸노인은 이보다 많은 평균 2.3개에 달했다.

대표적인 노인성 질병인 관절염 유병률을 보면 노인 평균 유병률은 27.4%인데 비해 홀몸노인은 39.7%로 조사됐고, ‘질병 때문에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많다’는 홀몸노인도 노인 평균 30.1%보다 많은 39.2%였다.

영양관리의 측면에서도 ‘식비가 부족하다’는 홀몸노인은 40.8%로, 배우자와 사는 노인 18.8%, 자녀와 동거하는 노인 18.5%에 비해 훨씬 많았다.

결국 궁핍한 생활 속에서 돌보는 사람도 없다 보니 지병을 앓던 홀몸노인들은 숨지고 나서도 주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사례 관리자’ 도입, 통합 관리체계 갖춰야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홀몸노인들의 고독사를 막고 질병치료와 신체활동을 돕는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 노인의 질병치료, 정신건강 관리, 요양·안전·빈곤 문제를 각기 다른 기관이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일례로, 보건소는 질병관리에만 신경 쓰고, 복지관은 안전확인에 주력하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요양만 책임지고, 구청은 경제적인 위기가 닥칠 때만 개입하기 때문에 통합적인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사례 관리자’(case manager)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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