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간 국회로 ‘배달 출근’
33년간 국회로 ‘배달 출근’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0.22 15:30
  • 호수 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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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르트 방문판매원 이재옥(60)씨


박정희 전 대통령에서 이명박 대통령까지 7번이나 대통령이 바뀌는 동안 꼬박 33년 동안 매일 여의도 국회로 출근한 한국야쿠르트의 방문판매원 이재옥(60)씨가 화제다.

이씨는 1977년 야쿠르트 배달 일을 시작한 이후 33년간 국회로 ‘배달 출근’을 했다. 이젠 배달사원 중에서도 최고참이 됐다. 또 국회위원 고객만 300여명에 달할 정도의 베테랑 사원이기도 하다. 그의 고객은 국회부의장에서 사무처직원, 매점 주인까지 500명이 넘고, 하루 배달제품만 800여개에 달한다. 단골 고객이 많은 덕분에 이씨가 속한 지점은 본사가 수여하는 최우수 지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보통 국회의원하면 언성 높이며 싸우는 모습을 떠올리는데, 배달하면서 실제로 만나는 의원들은 대부분이 소탈하고 다정해요. 아침에 복도에서 마주치면 ‘이른 시간에 고생이 많다’며 격려의 악수를 건네주는 분도 많아요. 국민들을 위해 수고하는 분들의 건강을 책임진다는 사명감으로 일하다보니 어느새 33년의 시간이 흘렀네요. 야쿠르트 새댁에서 이젠 할머니가 됐어요(웃음).”

입사 당시 이씨는 남편 몰래 일을 시작했다. 심혈관질환을 앓았던 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무역회사에서 일한 경력도 있었지만 아픈 딸을 위해서 노란색 유니폼을 거리낌 없이 입었다. 남편의 월급이 4만5000원이었던 시절, 입·퇴원을 반복하는 아이를 돌보는 그에게 약 3만원의 수입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았다.

이씨는 “젖먹이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것으로 불이익을 받을까봐 전전긍긍했을 만큼 당시엔 일하는 여성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았다”며 “지금은 주부의 사회진출을 색안경을 끼고 보는 사람도 줄었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야쿠르트 배달원 수만 전국적으로 1만3000여명에 달한다”고 귀뜸한다.
한 분야에서 오랜 시간 인정받으며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는 주저 없이 ‘가족애’를 꼽았다. 그는 “어려웠던 시절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일을 시작했고, 든든한 가족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남편과 딸이 자신의 33년의 삶을 높이 평가해 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배달 수레를 끌 수 있는 힘이 남아 있는 날까지 노란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전했다. 이른 아침 어김없이 국회로 향하는 그의 배달 수레에는 음료가 아니라 ‘건강’과 ‘애정’이 가득 실려 있다.

안종호 기자/사진=한국야쿠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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