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끝이 아냐”…조각가로 변신
“은퇴는 끝이 아냐”…조각가로 변신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0.22 15:31
  • 호수 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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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조각가 신성현(63)씨

 

▲ 사진=임근재 기자
   

넓적한 동양인 얼굴에 조선시대 여인들의 전통 쪽진 머리, 그리고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마리아 상….

10월 13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중구 평화화랑에서 열린 조각가 신성현(63)씨의 개인 전시회에 선보인 한국형 마리아의 모습이다. 신씨의 조각전에는 2000년 전 성모 마리아를 이 땅의 조선 여인으로 묘사한 이 작품 외에도 25개의 색다른 조각상들이 관객들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신씨는 정통 조각가가 아니다. 그가 조각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불과 5년 전이다. 지난 2005년 8월, 40여년 동안 몸담았던 한국전력 엔지니어에서 은퇴한 직후였다. 그는 은퇴가 끝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으로 여겼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가슴에 품었던 예술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조각을 시작했다.

유년시절부터 미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지만 가정형편과 ‘예술을 하면 굷어 죽는다’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일찌감치 꿈을 포기했었다. 한국전력 엔지니어로 40여년 동안 일하면서도 틈틈이 화방에서 그림을 그리고, 직장 서예동호회에서 못 다한 꿈을 대신했다. 하지만 예술에 대한 그의 열정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씨는 “남들보다 훨씬 늦게 시작했지만 조각은 내 인생의 깊이와 성취감을 높이는 가장 소중한 친구”라며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노년에 찾은 제2의 전공과 같다”고 말한다. 이어 “이제는 정년퇴직 후에도 30~40년을 사는 노인들이 많다. 소모적인 단순 취미만으로 노후를 보람 있고 행복하게 꾸릴 수는 없다. 혼자 할 수 있으면서 생산성을 갖춘 제2의 전공을 준비하고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가 처음 조각을 시작할 땐 어떤 재료와 도구를 사용하는지도 몰랐다. 전문도구가 아니라 가정용 쇠톱과 목각용 칼을 사용해서 늘 작업이 끝나면 다친 손을 치료하기에 바빴다. 손바닥 만한 작품 하나 만드는데 무려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하지만 신씨는 포기를 몰랐다. 지역 대학교수들과 미술관장을 찾아가 작품에 대한 평가와 조각기법을 배워나갔다. 강원대 양재권 교수와 박천갑 영월 국제현대미술관장 등이 지금의 조각가 신성현을 있게 한 숨은 공로자들이다.

그 결과 2008년 첫 개인전을 열었고, 2009년 제1회 가톨릭 미술 공모전에서는 입상의 영예도 안았다. 12개국 500여명의 참가자 중 입상자 11명을 뽑는데, 당당히 그의 이름을 올린 것이다.

“조각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기쁨도 크지만 전시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때의 성취감과는 비교할 수 없다. 내 작품을 보는 이들은 나이의 적고 많음,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같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의 모든 작품에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우리 의상, 우리 냄새, 우리 얼굴이 나무와 돌의 질감과 어우러져 전통의 멋을 표현한다. 거친 나무와 차가운 돌도 그의 손을 거치면 부드럽고 온화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신씨는 전시회 수익금의 상당 금액을 봉사단체에 기부할 계획이다. 자신은 다음 작업의 재료비 정도만 있으면 족하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젊게, 그리고 누구보다 넉넉하게 삶을 누리는 그의 모습이 어떤 조각보다 빛나 보였다. 앞으로 그가 만들 작품들이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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