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기찬 노년생활] 명절연휴 가족 그리움에 잠 못 이루지만…
[활기찬 노년생활] 명절연휴 가족 그리움에 잠 못 이루지만…
  • 박영선
  • 승인 2006.10.13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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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했던 시골집 사람소리 煎 부치는 냄새로 활기

불편한 잠자리, 가족들 불협화음 등 섭섭함도
모두가 돌아가고 나면 불감증 짜증만 남아

 

자식들이 모이면 비좁을 집을 생각해 평상시에는 광으로 쓰이던 윗방의 물건들을 치우고 아침저녁 쌀쌀한 기온차를 생각해 창호지도 새로 바른다.

 

그러는 사이사이 깨를 털고 고추를 손질한 후 장에 나가 참기름을 짜고 고춧가루를 빻아온다. 또 베어 놓은 나락을 백미와 현미로 나눠 찧을 준비를 하고 밭에서 캔 고구마와 땅콩, 녹두 같은 작물을 꾸러미, 꾸러미 지어 마루 한 귀퉁이에 쌓아 놓는다.

 

명절을 쇠고 서울로 돌아갈 때 자식들에게 하나씩 안겨 주기 위해서 노부부는 며칠 전부터 손을 쉴 틈이 없다.

 

시골에 와도 오며 가며 귀성길에 시달리고 직장생활에 바빠 자식들이 머무는 것은 고작 많이 있어봤자 삼, 사일 낮과 밤이지만, 노부부는 자식들이 고향집을 찾는 2대 명절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낙으로 산다.

 

예전 같으면 큰 아들, 작은 아들이 한데 모여서 농사지으며 오순도순 살았겠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다. 아들들도 같은 서울에 살아도 동서로 갈라져 한번 오가려면 큰마음 먹어야 오갈 정도가 되었다.

 

정 할머니는 자식들이 오면 쪄줄 옥수수를 손질하며 가볍게 한숨을 짓는다. 만날 때는 좋지만, 곧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가슴 한쪽이 미어지기 때문.

 

그렇다고 어른이 되어서 ‘서운한 티’를 모두 드러낼 수가 없다. 아들네가 직장을 버리고 시골로 내려와 살 수도 없는데다, 노부부가 서울로 올라가서 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겨우 20평대 아파트를 마련해 남매를 키우는 자식들의 삶도 빠듯하기 그지없어 노부부가 끼고 싶어도 낄 공간이 없다.

 

자신들의 세대는 한 방에서 서너 명이 위, 아래로 발을 뻗으며 잠을 잤지만, 자식들의 세대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아파트를 넓혀 가자니 ‘억, 억’ 하는 돈이 장난이 아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죽으면 그때나 자식들과 함께 살까, 아니 요즘은 홀로 남은 노인네도 자식에게 의탁을 하지 않고 살던 터전을 지키며 사는 것이 추세가 되었다. 서로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할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어리는데 곁에 있던 할아버지가 ‘쓸데없이…’ 하며 핀잔을 준다. 그러나 돌아앉은 할아버지의 뒷모습에도 허전함이 배어있다. 할아버지는 “임자, 울고 싶거든 지금 실컷 울고 자식들 앞에서는 그저 좋은 낯빛만 가져”라며 당부를 한다.

 

서울 강북구의 허름한 빌라 지하방에 사는 한모(67) 할머니는 “차라리 추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독거노인인 한 할머니에게는 남들은 가족을 만나 좋다는 명절이 외로움과 고통을 씹는 시간들이기 때문이었다.

 

젊어서 남편과 사별하고 외아들 한명을 키우며 살았는데, 그 아들은 10여년 전 해외로 떠났다. 대한민국에서 먹고 살기 힘들다며 자리를 잡는 대로 모시러 오겠다고 한 것이 벌써 강산이 한번 변했다.

 

한 할머니는 처음에는 아들을 기다렸으나 지금은 포기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 한번 해오지 않아 아예 아들을 가슴 한견에 묻었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가슴속의 무덤이 뚫고 올라와 아려온다. 올 사람도, 갈 곳도 없이 오도카니 앉아 있다 보면 어서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리고 싶은 심정이 새록새록 든다.

 

안산에 사는 박모(65) 할머니는 명절만 되면 골치가 아프다. 재작년에 막내며느리를 들이면서 ‘이제 할 일은 다했으니 다리 뻗고 자도 되겠다’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세 아들과 며느리간의 불화가 심해 명절날은 집안싸움이 나는 날이 되기 때문이다. 차례상 준비부터 시작해 차례를 물리고 나서 극에 치달아 결국 고성과 울음이 오가며 뿔뿔이 흩어진다. 지옥이 따로 없다. 몰래 막내아들에게 돈을 좀 해준 것이 발단이 되었다.

 

변변한 직장 없이 새 살림 꾸리며 힘들어하는 막내아들에게 쌈짓돈을 준 것이 알려지면서 큰 며느리는 큰 며느리대로, 둘째 며느리는 둘째 며느리대로 입이 나왔다. 하는 수 없어 사업 자금이 필요하다는 큰 아들에게 집을 저당 잡히고 대출을 해주자, 둘째 아들의 반발이 커졌다. 

 

클 때도 차별을 받았는데 결국 다 커서도 차별을 받는다며 서운해 했다. 게다가 큰 아들이 대출 이자를 잘 갚았다면 그나마도 갈등이 줄었을 텐데 대출 이자를 제때에 갚지 못하자 분란은 더욱 커졌다.

 

자식들 간에 막말이 오가고 가족관계가 만신창이가 되어 버려 박 할머니는 명절 뒤끝에는 어디 산에라도 올라가서 목을 매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이 들기도 한다. 올 명절도 어찌 지나갈지, 뒤 골 한쪽이 쪼아대듯 아프다고 한다.

 

명절이 가까워지면서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가슴이 답답하며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 잠을 설치기도 하는 증세가 나타나는 것을 ‘명절증후군’이라고 한다.

 

대개 명절 증후군은 며느리에게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노인들에게도 명절증후군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긴 연휴 뒤에 나타나는 공허함은 모두 노인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립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신영민 원장은 “명절 후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님의 공허함은 며느리증후군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라면서 “출가한 자식들을 목 빠지게 기다려온 명절, 그 시끌벅적한 명절이 끝나면 공허함을 넘어 우울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인의 경우 환경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생활의 리듬이 깨져 공허함으로 시작되는 우울증을 동반할 수 있다는 경고도 한다.

 

근거 없는 통증, 생리불순, 피로감, 신체감각 이상, 설사나 변비 등 소화기계 증상, 두통, 어지러움, 불감증, 발한, 신체건강이나 상태에 대한 과도한 걱정 등의 각종 신체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

 

공허함과 슬픔을 느끼고 쉽게 우는 등의 우울한 기분이 들고, 사소한 일에도 쉽게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등의 기분 상태가 2주 이상 지속될 경우 전문의에게 적절한 치료를 받아 만성적 우울증으로의 발전을 막아야 한다고 한다.

 

장옥경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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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우울증 척도

1.당신은 요즘 자신의 생활에 만족합니까 

 

2.당신은 활동과 흥미가 얼마나 저하되었습니까 

 

3.당신은 앞날에 대해서 희망적입니까 

 

4.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맑은 정신으로 지내십니까 

 

5.당신은 대부분의 시간이 행복하다고 느끼십니까 

 

6.당신은 지금 살아있다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합니까 

 

7.당신은 가끔 낙담하고 우울하다고 느낍니까 

 

8.당신은 지금 자신의 인생이 매우 가치가 없다고 느낍니까 

 

9.당신은 인생이 매우 흥미롭다고 느낍니까 

 

10.당신은 활력이 충만하다고 느낍니까 

 

11.당신은 자주 사소한 일에 마음의 동요를 느낍니까 

 

12.당신은 자주 울고 싶다고 느낍니까 

 

13.당신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즐겁습니까 

 

14.당신은 결정을 내리는 것이 수월합니까 

 

15.당신의 마음은 이전처럼 편안합니까 

 

※문항 중 5개 이상 해당되면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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