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 ‘죽음준비’는 보다 잘 살기 위한 ‘발판’
웰다잉, ‘죽음준비’는 보다 잘 살기 위한 ‘발판’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0.10.29 15:35
  • 호수 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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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유언장·사전의료지시서 작성 등

‘가치 있는 삶’실천·꿈 찾아 도전…용서와 화해도

 

▲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소속 웰다잉 연극단원들이 연극‘행복한 죽음’을 열연하고 있다. 사진=삶과죽음을 생각하는 회


서울 양천구에 사는 김인수(68)씨는 얼마 전 교통사고로 친구를 잃었다. 평소 술과 담배는커녕 일주일에 2~3차례 등산을 즐겨하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한 친구였기에 그 충격이 더 컸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를 잃은 뒤 김씨는 ‘나도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덜컥 겁부터 났다. 

 

김씨처럼 노년층이라면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겪는다. 이 때문에 최근 ‘웰다잉’(Well-Dying), 즉 엄숙하고 경건하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죽음으로 현재 삶 소중함 깨닫는 계기 마련 

죽음준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삶과 죽음은 결국 동전의 앞뒷면과 같다”며 “죽음 준비는 역설적으로 단순히 삶을 마무리 짓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삶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성찰의 기회”라고 강조했다.

죽음준비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물론, 아름답고 존엄한 죽음을 위한 사색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또 자살 등 잘못된 죽음을 막는데도 도움이 되고, 구체적인 죽음준비를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을 소중하게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이 죽음준비의 필요성으로 꼽힌다.

유 경 가천의과대 교수(사회복지대학원)는 “죽음준비는 당장 죽을 준비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며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서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현재의 삶이 지니는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례절차 방법은 물론 유언이나 사전의료지시서, 장기기증, 호스피스관련 사항, 영정사진 및 영상편지 촬영, 수의 마련, 자서전 쓰기 등 일상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웰다잉을 준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서전,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웰다잉’준비

자서전은 이미 일상생활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웰다잉’ 준비로 이미 보편화됐다. 

한정란 한서대 교수(노인복지학과)는 “자선전은 잊고 있던 기억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치를 재발견하게 도와주고, 그로 인해 현재의 삶을 더 살만한 가치가 있도록 돕는다”며 “또 과거와의 화해이자 불만과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시켜주는 통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특히 사진으로 자서전을 작성할 경우 과거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모습과 기분, 분위기까지 모두 담아 낼 수 있다는 것이 특징.

사진 자서전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자신의 자서전에서 주요 주제 혹은 방향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 정한다. △갖고 있는 사진 중 자서전의 주제나 방향에 걸맞은 사진을 각 인생주기별로 선택한다. △선택한 사진을 보면서 기억을 회상하며 전체적인 자서전 구성을 설계한다. △사진 중 결정된 구성과 주제에 맞는 사진을 다시 추려낸다. △선택한 사진은 주제와 순서에 따라 정돈한 후 준비한 파일이나 공책, 앨범에 붙인다. △주제를 붙이고 사진마다 제목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 나간다. △글 중간이나 사진 여백 등에 기념이 될만한 편지나 메모를 함께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 넣는다. △자서전 맨 앞에 자신의 연대표를 넣거나 머리말을 쓰고, 후기나 소감을 적는다. 

◇건강할 때 유언장·사전의료지지서 작성해야

최근엔 유언장이나 사전의료지시서 등 갑작스런 죽음에 자기결정권을 대신할 수 있는 문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홍양희 회장은 “갑작스런 죽음을 대비한 유언장이나 사전의료지시서는 건강할 때 미리 작성 해두는 것이 좋다”며 “또 평소 가족들에게 연명치료나 사후(死後) 조치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밝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유언장은 유산상속, 장례절차, 시신기증 등의 분쟁이나 갈등 등 사후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가장 많이 이용되고 있는 자필증서 유언은 반드시 자필로 써야 하며 컴퓨터나 대필, 고무인 등의 사용은 무효다. 특히 날짜, 이름, 주소를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하며, 수정 시에도 반드시 도장을 찍어야 한다. 

또, 사전의료지시서는 환자가 자신의 치료에 대해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문서형태로 자신의 의사(意思)를 밝히는 지침서로,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 가족과의 협의 하에 연명 장치를 제거해야 할 경우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의료사전지시서는 앞으로 의식 불명 시 인공 연명장치를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와 항생제나 진통제와 같은 의약품의 사용 정도 등을 결정한다. 이 지시서 또한 유언장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증인의 성명 또는 공증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남은 생애 계획이 궁극적 목표 

‘웰다잉’은 앞으로 잘살기 위한 준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성찰하고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기 웰다잉 전문강사는 “죽음준비의 목표는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를 고민하는 것”이라며 “지금까지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했다면 남은 생은 이를 역전시킬 수 있는 기간으로 받아들여 실제로 실천하는 기회로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기 강사는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허황된 목표가 아닌 자신의 신체적·경제적 여건을 고려해 작더라도 의미 있고, 남에게 유익함을 줄 수 있도록 하라는 것. 그러다보면 스스로 만족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그동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을 찾아 도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실천가능한 일을 찾되 쉬운 것부터 도전해야 한다. 예를 들면 비문해자라면 한글을 배우거나 컴퓨터에 도전하고, 평소 꿈꿔왔던 여행을 떠나는 것 등을 꼽을 수 있다. 이와 함께 용서와 화해도 반드시 필요하다.

정상기 강사는 “가슴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품고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며 “용서와 화해를 통해 흐트러진 관계를 풀어야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웰다잉 열풍, 삶과 죽음 성찰의 기회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죽음 관련 강좌나 세미나는 물론 웰다잉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개설하는 곳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단체가 바로 사회복지법인 ‘각당복지재단’이 운영하는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다. 1991년 4월 창립한 이 단체는 삶과 죽음을 통해 지난 삶의 궤적을 정리하고 계획적인 여생을 성찰하고 있다.

이 단체는 2002년부터 죽음준비교육 지도자과정을 개설하는 것은 물론 2007년부터는 55세 이상 전문직 퇴직자를 대상으로 ‘웰다잉’(well-dying)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개설, 현재까지 300여명을 배출했다. 웰다잉 전문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만도 100여명에 이른다.

또 지난해부터 웰다잉 전문강사들로 구성된 웰다잉 극단을 구성, 어르신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죽음 준비교육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밖에도 올 9월에는 나흘 동안 ‘제1회 웰다잉 영화제’를 마련해 죽음을 다룬 국내외 영화 상영과 함께 명사 초청 특별강연, 세미나도 가졌다. 문의 02-736-1928

◇죽음준비, 지자체·대학 등 속속 선봬

지자체와 대학, 노인복지 단체에서도 ‘웰다잉’ 열풍이 불고 있다. 서울 노원구는 지난 2007년부터 삼육대학교와 협력을 맺고 40∼60대 성인들을 대상으로 매년 상·하반기로 나눠 죽음준비학교인 ‘아름다운 인생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 임종을 위한 법적 준비, 사별 후 홀로서기, 입관체험과 유언장 작성 등 다양한 이론 강좌와 체험실습 형태로 진행하고 있다. 문의 02-2116-4343

동국대도 국내 최초로 지난해 말부터 불교문화대학원 웰다잉 전문지도사 과정을 개설 100여명이 넘는 웰다잉 지도사를 배출한 바 있다. 문의 054-770-2393

서울 종로에 위치한 서울노인복지센터도 2006년부터 ‘사축제 사(死)는 기쁨’이라는 주제로 죽음준비 프로그램을 실시,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벗고자 어르신들의 삶의 과정을 되돌아보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문화로 확산시키고 있다.  문의 02-723-1886

참고자료 :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웰다잉 교육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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