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실패 극복 위해 컴퓨터 입문…어르신 'IT전도사' 변신
사업실패 극복 위해 컴퓨터 입문…어르신 'IT전도사' 변신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1.18 13:22
  • 호수 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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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정보화교육원 ‘은빛둥지’ 라영수(69) 교육원장

▲ 어르신정보화교육원 '은빛둥지' 라영수(69)  교육원장. 사진=임근재 기자

경기지역 노인 5000여명으로부터 ‘IT전도사’로 불리는 백발의 노신사가 있다. 어르신정보화교육원 ‘은빛둥지’의 창립자이자 원장인 라영수(69)씨가 주인공이다.

‘은빛둥지’는 경기 안산시 본오동에 자리한 비영리 민간단체로 다양한 노인정보화교육을 실시하는 노인IT 평생교육기관이다. 10년 간 5000여명의 교육수료생을 배출했고, 현재 교육 중인 등록회원 수도 180여명에 이른다.

“고령화 대책이 따로 필요한가요. 노인들이 오랜 시간 체득한 경험과 정보들을 인터넷과 사진, 영상들에 담아내면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요(웃음). 앞으로 고령사회가 되면 노인들이 인터넷으로 전 세계에 접속해 지혜를 나누고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될 겁니다. 은빛둥지는 그 가능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는 중입니다.”

라 원장이 처음 노인정보화 교육을 시작한 것은 지난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IMF 경제위기로 사업 실패라는 큰 시련을 겪었던 그는 IT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고, 안산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하루에 2개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3년간 밤낮없이 학업에 매진, 졸업 후엔 IT 관련 벤처기업도 창업했다.

우연한 기회에 동사무소에 마련된 인터넷 부스에서 이웃 어르신 3~4명에게 이메일 사용법과 인터넷 검색 등을 가르친 것이 ‘은빛둥지’ 창립의 계기가 됐다. 입소문을 타고 컴퓨터를 배우려는 지역 어르신들이 20명 이상 늘면서, 2003년 10월 본오동의 노인 회관에 ‘은빛둥지’를 세우게 됐다.

그는 “사업 실패보다 더 무서운 건 나이 들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외로움’이었다”며 “내게 재기의 꿈을 심어준 컴퓨터를 노인들이 함께 배워 활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고 창립 당시를 회상했다.

뜻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고 했다. 이메일이 뭔지도 몰랐던 ‘컴맹’ 어르신들이 ‘실버정보화대회’ ‘어르신인터넷과거제’ 등 각종 IT 경진대회에 출전해 대상과 금상을 석권하면서 은빛둥지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4년에는 디지털사진 교육 과정을, 2005년에는 동영상 교육과정을 추가 개설했다. 또 2006년 설립된 ‘은빛미디어’ 노인영상제작단은 2008년 8월부터 노동부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 돼 케이블방송과 지역방송사에 월 1편 이상의 컨텐츠를 직접 제작해 제공할 정도다.

은빛미디어를 통해 100여명의 노인영상제작인이 탄생됐으며, 이들의 작품이 방송 컨텐츠로 인정받게 되면서 노인동영상제작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무엇보다 어르신들이 지속적으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 큰 성과다. 은빛미디어는 이미 안산 출신인 염석주 선생의 해외독립운동을 발굴, 공론화해 기념사업을 이끌었다. 최근에는  3년째 면암 최익현 선생의 족적을 조명하며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에 있다.

은발을 휘날리며 ‘IT로 다시 사는 인생’을 외치는 라 원장. 그가 은빛둥지와 함께 걸어온 길은 ‘노인 신문화운동’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2005년에는 정부가 선정한 ‘최우수 정보화 단체’로 뽑혔고, 같은 해 라 원장은 노인 정보화 교육에 쏟은 노고를 인정받아 정보통신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2009년에는 정보격차해소의 공로를 인정받아 경기도지사 표창을 수상했고, 올해 6월에는 정보화교육상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특히 11월 12일 열린 은빛둥지 사진전시회 ‘황혼의 길손’은 올해로 5회째를 맞아 어르신 정보화교육의 표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라 원장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오늘도 5000여명의 수료생들에게 전수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심 중이다. 앞으로 노인전문포털 및 노인을 위한 정보를 제공하는 웹진 제작을 계획 중이다.

“IT는 노인과 사회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한다. 고령화시대에 제2의 인생을 여는 희망의 끈이 된다. 노인들이 변화하지 않으면 향후 20년 내에 다가올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은 갈 길을 잃게 될 것이다. 소일거리를 고민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노인들은 설 자리가 없다. 은빛둥지의 10년 역사가 검증한 ‘IT기반노인평생학습’은 다가올 초고령사회를 여는 열쇠라 믿는다.”

한 세기 뒤인 2105년에 개최 될 ‘제100회 황혼의 길손’ 사진전시회를 준비한다는 마음으로 매일을 산다는 라영수 원장. 그가 말하는 ‘노인 신문화운동’은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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