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들어도 기술은 녹슬지 않는다”
"나이는 들어도 기술은 녹슬지 않는다”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2.01 16:21
  • 호수 2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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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경력 현역 선박기술자 전국명(75) 어르신

 

▲ 전국명(75) 어르신이 11월 26일 열린 ‘2010 히어로 대상’에서 노령근로자 우수 히어로로 선정돼, 상장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40년 동안 ‘선박조립’의 외길을 걸어 온 베테랑 근로자가 있다. 올해로 75세를 맞은 전국명 어르신이 그 주인공.

전 어르신은 정년퇴임 후 10여년이 지난 지금도 울산에 있는 조선 공장 조립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선박 건조용 철 구조물(블록) 절단·조립 분야에서 손꼽히는 배테랑이다. 그는 이러한 경력을 인정받아 지난 11월 26일 대한은퇴자협회가 수여하는 우수 히어로(hero)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군 전역 후 30년 동안 선박기술자로 일한 그는 57세의 정년을 채우고, 1997년 은퇴했다. 회사는 은퇴자들을 배려해 하청 업체의 일용직 근로자로 일할 수 있도록 조치했지만 반평생 선박 부품만 만져 온 백전노장들을 만족시킬 순 없었다. 일할 수 있는 기력도 있고, 뛰어난 기술도 지녔지만 정년에 묶여 일손을 놓게 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선박 바닥만 30년 이상 만든 최고 기술자들이 조립공장에서 단순 작업이나 하고 있는 현실이 답답했어. 그래서 2001년에 퇴직한 현장 노동자 12명이 ‘정년 없는 사업장’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았지. 수 십년 간 쌓아 온 실력만 발휘한다면 퇴물 취급받는 노인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거든.”

노동 강도가 세고 안전사고 위험이 높아 젊은이들도 기피하는 선박 하청업체이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의 열망을 꺾을 수는 없었다. 퇴직자들이 창업하고, 퇴직자들이 재취업해 만든 회사. 전 어르신이 현재 근무하고 있는 (주)신성산업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하청업체 일을 하다 눈치 보여서 그만 둔 사람, 퇴직 후 집과 경로당을 오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 가족을 이뤘다. 현재 회사 직원은 50여명까지 늘었다. 직원들 평균 나이는 67세. 90% 이상이 환갑을 넘겼고, 70세를 넘긴 사람도 9명이나 된다.

그는 “사회가 정년퇴임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그렇지, 직원들 모두가 산업 현장의 산증인이자 백전노장들이다. 경험은 돈 주고도 못 산다. 기력은 쇠했을지 모르지만 기술은 녹슬지 않는다”며 “특히 배를 만드는 작업은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가 요구되기 때문에 젊은 인력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당시만 해도 업계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노련한 기술력으로 결함 없는 상품을 납기일 보다 앞서 납품하는 성과를 보이자 이런 편견은 금새 사라졌다. 어렵게 일자리를 찾은 고령의 근로자들이 엄격한 규율로 스스로를 통제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두가 아침 8시에 출근해 오후 6시까지 일한 뒤 함께 퇴근한다. 4000여평의 작업장엔 담배꽁초를 찾아보기 힘들다. 지각이나 무단 결근은 거의 없고,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작업장에선 절대 뛰지도 않는다고.

전 어르신은 “젊은이보다 근력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직원들의 호흡이 잘 맞고, 능숙한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산성은 경쟁업체보다 앞선다”며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이어 그는 “노인들에게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침에 출근할 ‘일터’가 있는 것”이라며 “내게 배를 만드는 일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햇볕에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훈장과도 같다고 말하는 전국명 어르신. 그의 가슴에 담긴 일에 대한 자부심과 사명감의 무게는 그 어떤 작업도구 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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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뺑이 2013-06-09 05:45:31
정년 퇴임이란 것을 없에고 자임 퇴임으로 사회구조로 바꿉시다.
우리사회 에서 현 재도로서 나이 많다는 이유로 밀어 내서는 않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