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만 가는 노인자살… 헛물만 켜는 예방대책
늘어만 가는 노인자살… 헛물만 켜는 예방대책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2.04 09:54
  • 호수 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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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자살, 17년간 11.4배 급증, ‘정부’없는 자살예방대책 ‘제각각’

국가 나서 일원적 예방 인력·기구 보강, 노인전문상담기구 설치 시급

“사는 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남은 것은 외로움과 원망뿐이다. 그저 편히 죽고 싶다”경기 수원에 살고 있는 기초생활수급자 김모(71·남) 어르신이 매일 되뇌던 말이다. 그는 최근 아내를 잃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평생을 의지하며 살던 아내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졌다. 아내와 사별한 뒤 지병인 고혈압과 당뇨 증상도 심해졌다. 거동조차 힘에 부쳐 밖에 나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딸이 하나 있지만 명절이나 돼야 얼굴만 잠시 비출 뿐이다. 극심한 외로움과 생활고를 참기 어려웠던 김 어르신은 수차례 극단적인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는다. 김 어르신처럼 여러 가지 이유로 자살을 시도하는 어르신들이 늘면서 정부가 다양한 노인자살 예방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자살률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노인자살 예방대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에 대해 살펴본다.


▲80대 이상 자살률, 20대보다 5배 높아
통계청이 발표한 ‘2009년 사망원인 통계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자살자 수는 1만5413명이다. 하루 평균 42.2명, 34분에 1명꼴로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연령이 높아질수록 자살률(인구 10만명당 사망자수) 또한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0대 이상(127.7명)의 경우 20대(25.4명)보다 5배 이상 높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 조사결과에 따르면 2008년 65세 이상 노인 자살자 수는 지난 17년간 11.4배 증가했다. 1990년 314명에서 2007년 3541명으로 늘어나 수치상 노인 자살자 수는 매년 10.4%씩 증가한 셈이다.

한국자살예방협회 하규섭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노인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며 “노인 자살률의 경우 지난 20년간 꾸준히 증가하고 있고, 전체 자살률 중 노인 자살이 차지하는 비율이 35%에 이른다”고 지적했다. 이어 “노인자살이 이렇게 심각한 수준이지만 자살 예방을 위한 정부예산은 연간 10억원에 머물고 있다”며 “정부 차원의 지원 확대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자살예방종합대책… 개별·단발성 행사에 그쳐
자살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는 2004년 국가자살예방 5개년 기본계획(2006~2010년)을 시행했고, 2008년에는 제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와 민간단체인 ‘한국자살예방협회’ 및 ‘생명의 전화’가 주축이 돼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더불어 서울시, 성남시, 수원시, 서울 노원구, 서울 서대문구 등은 자체적으로 노인자살예방센터를 개설해 운영 중이며, 경기도의 경우 지난 5월 도광역정신보건센터와 지역 정신보건센터의 컨소시엄을 통해 자살예방 홈페이지 ‘어린왕자와 희망빌리지’(www.mindsave.org)를 전국 최초로 구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효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 이수정 선임연구원은 “자살예방 사업수행기관이 지역사회 정신보건센터와 민간단체인 한국자살예방협회, 생명의전화로 국한돼 실질적인 사업대상자는 정신질환자와 우울증 환자”라며 “사업내용 또한 일회성 정신건강증진 교육이나 홍보, 또는 우울증예방프로그램 및 인터넷, 전화상담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노인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자살예방사업 및 인프라는 극히 미비한 상태”라며 “지자체와 노인복지관, 복지단체들이 자살예방센터 건립과 전문상담가 육성, 자살예방 캠페인 등을 펼치고 있지만 정부차원의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아니라 단발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부가 추진하는 자살예방사업은 1차 예방사업인 ‘자살위험요인 예방사업’에 집중돼 있으며, ‘자살위험자 조기발견 및 조기개입사업’인 2차 예방대책과 ‘자살시도자 치료 및 사후관리사업’인 3차 예방대책의 경우 노인들을 위한 사업이 전무한 상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04년 시작된 자살예방 1차 5개년 계획의 추진효과가 미흡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며 “2008년 시작된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은 보다 세부적인 10개 항목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하고, 시군구가 연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2차 자살예방종합대책(2009~2013)에 따르면 2008년 3개에 불과했던 자살위기 대응팀이 광역시를 중심으로 2013년 12개소까지 연차적으로 확충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역정신보건센터 설치율을 시군구의 85% 이상, 알코올상담센터 설치율을 시군구의 20% 이상으로 확충해 자살예방 인프라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지역사회 기반의 다양한 자살예방 인력(정신보건전문요원, 보건·복지·교육·경찰·소방대)에 대한 교육체계를 강화하고, 자치단체의 조례 등을 통해 자살예방 관련 법규 제정을 추진해 법적 토대도 마련한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서울 노원구가 지난 11월 29일 구의회에 상정한 ‘생명존중과 자살예방에 관한 조례 제정안’이 부결되면서 자살예방 관련 법규 제정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이수정 연구위원은 “2차 자살종합예방대책의 10대 과제에 ‘노인학대 예방 및 독거노인 지원 강화’란 세부항목을 통해 노인특성에 맞는 자살예방대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2차 또는 3차 예방차원의 자살예방대책은 미비하다”며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파견이나 노인학대 전문상담원 양성 및 자살 재시도자의 사후관리 체계에 대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인자살 수행 비율 4대 1… 전문프로그램 개발 시급
노인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감행하지는 않지만 한 번 마음을 먹으면 성공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젊은층의 자살 시도 대 자살 수행 비율은 200대 1인 반면, 노인자살은 4대 1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다.

배재남 인하대 의대 교수는 “노인자살은 일반적인 성인의 자살과 비교할 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양상을 보인다”며 “노인들의 경우 다른 연령층에 비해 사별을 여러 차례 경험하고, 만성적인 신체질환에 시달리고 있으며, 퇴직 및 소득원의 감소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등 스트레스에 시달려 자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설명했다.

배 교수는 “노인의 경우 젊은층과 달리 자살의도를 노출하지 않는 경향이 많고, 또 노인의 우울증을 노화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가족들의 태도로 인해 적절한 시기에 개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프로그램을 개발해 노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지역 거점별로 노인자살 예방센터의 설립 및 노인전용 상담서비스, 노인 전문 교육프로그램 등 노인들의 눈높이에 맞춘 전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프로그램 개발과 시행은 지자체나 개별 기관이 아니라 중앙정부의 주도 하에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조직적인 관리가 필수”라고 덧붙였다.

▲노인 자살자의 50~78% 우울증… 사후관리 체계 필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나연 박사는 “노인자살은 그 특성상 ‘합리적 자살’이 많으며, 자살시도 방법도 치명적”이라며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사후관리체계 프로그램을 마련해 우울증 등 정신건강과 관련한 치료와 지속적인 관리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전국에 국민의 정신건강을 돌보는 정신보건센터를 설치·운영해 노인자살문제를 주요 사업 중 하나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자살예방협회 김희준 사무국장은 “외국의 경우 자살을 막기 위해 자살가능성이 높은 독거노인이나 정신병력을 가진 고위험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전화상담, 방문간호 등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홀로 사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전화 상담이나 방문 등 수시로 점검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사무국장은 이어 “진료인 또는 복지사 등 어르신들의 주변인에 대한 자살예방교육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살하는 사람의 60% 정도가 우울증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 가운데 치료를 받는 사람은 20% 미만”이라며 “자살예방교육을 받은 주변인이라면 어르신들의 증상을 보다 빨리 파악할 수 있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예방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 전용 상담기관 및 전담기구 마련해야
자살예방센터 등 어르신들을 위한 전문상담기관을 증설하고, 자살예방을 위한 전담기구를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박성신 상담사는 “어르신들의 자살률이 급증하지만 이렇다 할 교육기관이나 상담기관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어르신들과 그 주변인들이 마음 편히 찾아가 자살예방과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국생명의전화 하상훈 원장은 “자살예방 전략의 수립, 시행, 평가, 조정을 담당할 전담기구 설립을 위한 법적 근거마련과 예산 확보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또 “정부, 비정부 민간 연구자기구 구성 및 예방 전략 개발, 한국자살예방협회, 한국생명의전화, 대한노인회 자살예방대책위원회 등 민간자원의 활용을 위한 인증 및 지원을 통한 정책의 실효적 수행과 생명존중, 어르신존경 등의 사회문화풍토 조성에 정부가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인자살 예방 도움 단체
▲생명의 전화 1588-1389 ▲노인전문보호기관 1577-1389 ▲노인자살 예방센터 3633-119 ▲블루터치핫라인 1577-0199 ▲블루터치 www.blutouch.net ▲노인생명돌봄 www.noinmaum.or.kr ▲온라인자살예방센터 http://suicide. blutouch.net ▲어린왕자와 희망빌리지’ www.mindsav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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