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나무 심어 후손들에 울창한 대지 물려 줄 터”
“사막에 나무 심어 후손들에 울창한 대지 물려 줄 터”
  • 안종호 기자
  • 승인 2010.12.16 15:04
  • 호수 2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대 UN 녹색대사 겸 미래숲 대표이사 권병현(73)

▲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 대표이사 권병현(73) 어르신이 ‘2010 해피시니어 어워즈’에서 ‘희망씨앗상’을 수상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무를 심고, 환경을 가꾸는 데 국경은 없다’는 신념 아래 한국과 중국의 청년들과 함께 중국의 사막지대를 누비는 백발의 노신사가 있다. 사막화 방지를 위한 열정과 에너지 만큼은 청년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 권병현(73) 대표이사가 그 주인공이다.

권 대표가 처음 중국 식수사업에 뛰어들게 된 건 우리나라에도 심각한 피해를 입히는 ‘황사’ 때문이었다. 1998년 4월 주중 한국대사로 부임하던 날, 그를 맞아 준 건 숨쉬기조차 힘들게 불어 닥친 황사바람이었다. 다음 날 그 황사가 서울에까지 미쳤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 비로소 그는 사막화 문제의 심각성에 눈을 떴다.

“지구의 3분의 1 이상의 땅이 이미 사막화됐고, 지금도 한반도의 2배가 넘는 지역에서 새로운 사막지역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기후온난화에 비해 사막화 문제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 사막화는 온난화 못지않게 심각한 지구 환경의 위기다. 인간의 생활터전인 땅이 사막화되면 모든 생태계와 인간의 삶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는 국경을 넘어, 이념을 넘어 반드시 누군가는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에는 동쪽으로 번져나가는 사막화 확대를 인력(人力)으로 막을 수 없다는 여론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정부도 경제적 실익이 없는 사업에 신경 쓸 여력이 없다는 답변만 늘어놨다. 결국 그는 뜻을 함께 한 베이징 지역 한인들을 모아 베이징 인근 황폐지역부터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막화를 막는 데 나무를 심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없다’며 중국 당국을 설득, 조림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권 대표가 주중 대사직을 마치고 귀국하자 사막 식수사업도 지지부진해졌다. 공직에서 은퇴한 그였지만 인생의 후반전을 준비하는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사막화 방지사업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을 바쳐 진행해야 할 일이었다. 국가라는 장벽과 정부와 민간이라는 인위적인 구분도 무의하다고 판단했다. 몇 십년 후, 우리 후손들에게 맑은 공기와 울창한 대지를 물려줘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본격적인 나무심기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 국가가 나서지 않는다면 장차 세계를 이끌어 갈 청소년들과 환경을 되살리는 일을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다.”

결국 그는 2001년 1월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을 설립했다. 올해로 창립 10주년을 맞는 ‘미래숲’은 사막화 지역으로 양국 청소년을 보내 식수조립사업을 하면서 한중 양국 청년 교류를 돕는 민간우호단체다. 지금까지 9기 청년대표를 선발, 한국 대학생만 1000여명이 사업에 참여했다.

이를 계기로 2006년 10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함께 5개년 계획으로 황사의 발원지인 네이멍구(內蒙古)자치구의 쿠부치 사막에 방풍림(防風林)을 조성하는 ‘녹색장성(綠色長城)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남북 18km, 폭 200~400m의 녹색장성에 지금까지 약 4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이와 함께 사막에 자신의 나무를 심자는 ‘10억 그루의 내 나무 심기’ 캠페인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내외를 비롯해 故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세계 주요도시 시장들도 참여했다. 지난 6월 상하이 엑스포를 통해 온라인사이트(www.futureforest.org)를 개설, 전 세계 어디서나 사막화방지 나무 심기 개인 후원을 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지난해에는 공청단과 함께 ‘한중청년사막화방지위원회’가 출범되는 성과도 낳았다. 더불어 지난 11월 11일 서울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UN과 함께 '지구를 살립시다‘(safe the earth)라는 주제로 시사만평 전시회를 열어 세계 정상들에게 지구 토양의 황폐화와 사막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데도 일조했다.

사회변화를 이끌고 공익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권 대표의 이러한 활동들이 알려지면서 지난 12월 15일에는 ‘2010 해피시니어 어워즈’의 ‘희망씨앗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최근에는 그의 국경을 넘어선 환경사랑 정신과 사막화 방지사업의 성과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 2009년 12월 4일 유엔사막화방지협약(UNCCD)은 그를 초대 ‘지속 가능한 토지관리(SLM) 챔피언’ 겸 ‘녹색대사’(Green Ambassador)로 임명했다. 2012년까지 사막화 문제에 대한 세계적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홍보대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가 추진했던 ‘녹색장성 사업’은 사막을 막을 수 없다는 정설을 깬 첫 성공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권 대표는 사막화방지 사업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중국에서만 사막화로 잃은 마을이 2만4000여개에 달한다. 세계적으로는 수만 개의 마을이 자취를 감췄다. 피해인구만 2억명이 넘는다. 10년 동안 추진했던 녹색장성 사업의 성공은 사막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신념의 씨앗’을 뿌린 것에 불과하다. 이젠 사막을 녹색 생태계로 바꾸는 과제가 남았다.”

권 대표는 내년부터 사막화방지 사업이 아니라 ‘녹색 생태마을 복원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사막화로 마을을 잃고 떠난 주민들을 다시 이주시키는 것이 인생의 후반전을 뛰는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사명이자 비전이다.

10년 전 모두가 불가능이라며 만류했던 녹색장성 사업. 그 시작지점인 네이멍구 쿠부치 사막에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동물들이 뛰어노는 ‘녹색 생태원’이 들어설 날을 기대해 본다.

 안종호 기자 joy@100ssd.co.kr 사진=임근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