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여가문화 활성화, 재정·인프라 체계적 지원 절실”
“노인여가문화 활성화, 재정·인프라 체계적 지원 절실”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1.02 21:30
  • 호수 2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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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의 여가 및 문화활동 방식이 급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관람하고 즐기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엔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는 단계로 올라섰다. 어르신들이 주체적인 문화생산자로 발돋움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어르신들의 활동에 소요되는 재정이 열악하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적잖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지만 관계 당국은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다. 서울시가 2008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9988어르신프로젝트’의 일환인 실버문화벨트 조성을 통해 종로 일원이 노인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찾아드는 모습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새해 노인 여가문화의 활성화를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 ‘꿈꾸는 청춘예술대학’프로그램에 참여한 서울 중앙사회복지관 어르신 연극동아리 어르신들이 11월 22일 오후 서울 구립용산노인전문요양원에서 연극을 선보인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꿈꾸는 청춘예술대학은 서울시가 서울문화재단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노인 대상 문화예술교육 특별프로젝트다. 사진=임근재 기자

◇문화예술 관람 26.7%… 젊은이 3분의 1 수준
활기찬 노후를 보내기 위한 대안으로 노인여가활동이 강조되고 있다. 어르신들의 상당수가 일상에서 남는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 여가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 2008년 서울 및 경기지역 65세 이상 어르신 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노인 여가문화 활성화 방안을 위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61.6%)이 ‘남는 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서’ 여가활동을 한다고 응답했다. 이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18.7%),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해서’(9.8%),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7.1%), ‘건강을 위해서’(1.6%) 여가활동을 한다고 답했다.

이처럼 여가활동이 노인생활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문화생활을 누리고 있는 노인들은 많지 않았다. 특히 젊은 세대에 비해 문화생활을 누리는 비율이 3분의 1 수준에 머물러 노년층을 위한 문화생활 프로그램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08년 국민 40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60대 이상 연령층의 연간 예술행사 관람률은 26.7%로, 60세 미만 연령층의 75.3%에 비해 크게 낮았다. 노인들의 여가문화 활동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큰 폭으로 줄어들어 예술행사 관람률이 60~64세 33.0%, 65~69세 22.2%, 70세 이상은 14.0%로 낮아졌다.

이에 따라 현재 노인들의 대표적인 문화공간으로 손꼽히는 경로당과 복지관을 비롯해 지역문화원 등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해 어르신들의 여가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전국 각지에 약 6만여개의 경로당이 마련돼 과거 단순한 쉼터에서 여가문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노인종합복지관은 200여곳이 분포돼 있다. 문화원은 전국 130여곳에서 어르신문화학교를 개설, 지역특색에 맞는 노인여가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지원과 인력부족 등의 이유로 어르신들의 문화공간이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충분히 갖춰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각 지자체도 어르신들의 여가문화공간을 마련하고 있지만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서울시 노인문화거리 조성… 노인문화 활성화 모범
지난 2005년 이후 노인인구가 눈에 띄게 늘면서 고령화사회에 진입하자 노인 전용 문화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2007년에는 본지가 ‘노인문화의 거리’를 조성하는 캠페인을 벌이면서 매우 획기적인 전환점이 마련되기도 했다.

서울시가 2008년부터 자체 노인정책사업인 ‘9988어르신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서울노인복지센터를 중심으로 종로 일대를 노인문화의 거리로 만드는 ‘실버문화벨트’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서울 종로의 서울노인복지센터~탑골공원~종묘공원 구간에 노인전용 극장을 비롯해 공연장, 노래방, 북 카페, 노인용품점 등이 들어서 노인문화의 거리가 조성됐다.

이를 통해 서울시는 2009년 1월 종로 허리우드 극장에 어르신 전용극장을 만들어 만 57세 이상 어르신은 2000원만 내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같은 해 6월에는 종로구 경운동 SK허브프라자에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를 설립했고, 8월에는 어르신들이 운영하는 실버북카페 ‘삼가연정’, 노인용품점인 ‘은빛 행복가게’에 이어 2010년10월에는 인사동 인근에 노인 전용 문화예술공간인 ‘고운님’을 개관했다.

이밖에 서울시는 2008년 12월부터 60세 이상 어르신을 대상으로 거의 매월 ‘9988어르신 행복콘서트’를 개최하고, 서울문화재단과 함께 노인특화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인 ‘꿈꾸는 청춘예술대학’도 마련하는 등 노인여가문화 프로그램에서 매우 모범적인 행보를 잇고 있다.

◇여가문화, ‘관람’서 참여위주로 변모
노인들의 여가생활은 물론 문화활동 전반에 새로운 변화가 스며들고 있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관람하며 즐기는 수준에 머물렀다면 최근엔 어르신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하며 생산자로서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었다.

지난 2008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서울노인영화제’가 대표적인 예다. 이 영화제는 미디어분야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던 어르신들이 직접 영화제작에도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노년문화의 개척은 물론 젊은세대와 이해 및 공감대를 확대시켜 주목받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경로복지회 소속 부산실버예술단(단장 황영근)의 경우도 2007년부터 매달 한차례씩 부산지하철 서면역과 연산동역에서 자체적으로 문화공연을 펼치고 있다. 60세 이상 어르신 200여명으로 구성된 부산실버예술단은 지역 노인은 물론 시민들을 대상으로 합창, 무용, 하모니카 연주, 가야금 병창, 가요 등 다양한 공연을 펼쳐 이미 부산에선 ‘유명스타’가 됐다. 매달 지하철 역사 공연뿐 아니라 지역축제나 요양원 등을 순회하며 봉사활동도 한다.

특히 이 단체가 주목 받는 이유는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공연을 이어왔다는 점이다.

황영근 단장은 “회원 스스로 무료한 노후를 보내지 않기 위해 주체적으로 모임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며 “여가문화를 즐기는 것은 물론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건강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앞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경기 안산시 어르신 정보화교육기관인 ‘은빛둥지’(원장 라영수)도 2005년부터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을 전시하는 ‘황혼의 길손’ 사진전을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지자체가 어르신들로 구성된 음악밴드나 뮤지컬 극단 등을 조직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 노원구는 2009년 3월 65세 이상 단원과 전속가수로 구성된 노원구립실버악단을 꾸렸다. 서울시 중구도 2009년 7월 문화예술단체인 중구구립실버뮤지컬단을 창단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돈’… 대부분 재정 탓에 포기
문제는 어르신들이 창조적 문화생산자로 활동하는데 소요되는 비용이다. 노인축제나 행사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인색하다보니 어르신들이 기획한 문화활동이 축소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많아 아쉬움이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경남 김해의 ‘허황옥 실버문화축제’다. 국내 유일의 여성노인 문화축제인 ‘허황옥 실버문화축제’는 2007년 시의회와 지원예산을 둘러싼 의혹과 잡음으로 인해 결국 무산되고 말았다.

허황옥실버문화축제는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혼인, 가야국을 통치한 인도 공주 허황옥의 모험심과 양성평등 시책을 기리기 위해 2003년부터 매년 개최되고 있는 여성노인 문화축제다.

장정임 허황옥실버문화축제운영위원장(김해여성복지회관 관장)은 “여성 어르신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자 즐거움이었던 축제가 무산되면서 행사에 참여했던 어르신들의 상실감이 무척 컸다”며 “사회에서 소외된 여성노인들을 위한 축제가 홀대 받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장점임 관장은 조만간 ‘허황옥 실버문화축제’의 폐지에 대한 심경과 축제의 역사를 담은 ‘백서’를 출간할 계획이다.

또 지난해 10월 경기도 일원에서 펼쳐진 ‘2010용인국제노년문화예술제’도 약속된 지자체의 예산지원이 무산돼 행사에 큰 차질을 빚었다. 국제노년문화예술제는 2000년 3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등 3개국 노인지도자들이 매년 1회씩 전 세계 노인들을 초청, 노인문화예술제를 개최하자는 뜻을 모아 시작된 문화행사다.

그러나 지자체의 예산지원과 홍보, 인력동원에 대한 협조가 부족해 국제친선을 도모하는 세계 유일의 노인예술축제임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국노인복지단체연합회 관계자는 “2010년의 경우 경기도의 지원예산 부족으로 해외 공연단의 항공료는 물론 숙박비와 식사조차 대접하지 못했다”며 “세계 노인문화 예술을 공유하며 매년 개최되는 국제행사에 지자체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아쉽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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