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손녀와 함께 읽는 어르신들도 잘 몰랐던 설 세시풍속
손자손녀와 함께 읽는 어르신들도 잘 몰랐던 설 세시풍속
  • 이미정 기자
  • 승인 2011.01.27 16:50
  • 호수 2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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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조리’ 걸고 행운 기원하고·체 걸어 귀신 막는 ‘야광귀 쫒기’ 등

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본래 설날은 조상 숭배와 효(孝)사상을 바탕으로 새해 첫날을 축하하고, 자손들이 조상신을 숭배하는 신성한 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 의미도 매우 달라지고 있다. 명절 연휴 국내외 여행을 떠나거나 조리된 음식을 구입해 제사상을 차리는 모습은 일반화된 지 오래다. 심지어 아예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간소화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 돼버렸다. 사정이 이러니, 복조리 걸기를 비롯해 야광귀 쫓기, 청참, 승경도놀이, 돈치기 등 다양한 세시풍속은 역사책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돼 버렸다. 설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점차 잊혀져가는 세시풍속에 대해서 알아본다.
▲ 설날 전통 세시풍속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이 마련한 설맞이 행사에 참여한 가족들이 즐겁게 윷놀이를 하고 있다. 사진=국립민속박물관

◇설날, ‘낯설다’ ‘시작하다’ ‘삼가다’ 의미
설은 새해의 첫머리를 뜻한다.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를 지닌다. 설날의 어원은 대략 세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우선, 설날을 ‘낯설다’라는 말의 어근인 ‘설’에서 그 어원을 찾는 것이다. 그래서 설날은 ‘새해에 대한 낯설음’이라는 의미와 ‘아직 익숙하지 않는 날’이란 뜻을 동시에 갖는다. 즉 설날은 묵은해에서 분리돼 새로운 해에 통합돼 가는 전이 과정으로 아직 완전히 새해에 통합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익숙하지 못한 단계를 말한다.

설날은 ‘선날’ 즉, 개시(開始)라는 뜻의 ‘선다’라는 말에서 ‘새해 새날이 시작되는 날’ 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선날’은 시간이 지나면서 연음화(連音化)돼 설날로 와전됐다.

설날을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라는 뜻의 옛말인 ‘섧다’에서 그 어원을 찾기도 한다. 이는 설날을 한자어로 신일(愼日)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일이란 ‘삼가고 조심하는 날’이란 뜻인데, 이는 완전히 새로운 시간 질서에 통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언행을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이밖에도 설날을 원일(元日)·원단(元旦)·정조(正朝)·세수(歲首), 세초(歲初)·세시(歲時)·연두(年 頭)·연시(年始) 등의 한자어로도 부른다.

◇잊혀져가는 세시풍속 뭐가 있나
설날 세시풍속으로는 차례지내기를 비롯해 세배, 설빔, 덕담,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승경도놀이, 돈치기 등이 행해졌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차례나 세배, 덕담, 윷놀이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쉽게 볼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책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퇴색되고 있다.

설날 차례=과거 조상들은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 각 가정에서 대청마루나 큰방에서 제사를 지냈다. 제사 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쳤고, 조상의 신주(神主), 즉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냈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고 해서 지방이나 가문에 따라 다르다. 과거에는 차례를 가문의 전통에 따라 엄격히 시행됐지만 요즘에는 제사상에 열대과일이나 생전에 살아계실 때 좋아했던 음식을 올려놓는 경우도 있다. 또 차례도 생략하거나 여행지에서 한 상에 여럿이 지내는 경우도 있는 등 과거와 달리 차례 문화가 크게 달라지고 있다.

세배=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렸다. 주로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을 하는데 이를 세배(歲拜)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친 뒤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나 아이들에게는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줬다.

근래에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경로의식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마을 어른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단체로 세배를 올리고 음식을 준비해 대접하기도 한다.

설빔=설에 입는 옷을 ‘설빔’ 또는 ‘세장(歲粧)’이라고 한다. 한 해를 맞이하는 새날 아침에 고운 설빔을 입고 조상과 이웃에게 새해 인사를 한다. 묵은해의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일들은 떨쳐버리고 새해에는 일 년 동안 무사하고 길운(吉運)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새로운 각오와 새 마음을 함께 담고 있다.

설빔을 통해 어르신들의 체중을 가늠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옷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보니 따로 설빔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덕담=주로 한 해 동안의 일들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말이다. 주로 건강을 기원하거나 소원 성취 등에 대한 축하를 하는데 과거에는 이웃끼리는 인사하고, 먼 곳은 전갈을 하거나 서신으로 연락한다. 이를테면 오늘날 새해 인사카드를 보내는 것도 덕담인 셈이다.

설그림(세화·歲畵)=정초에 문간에 붙이는 문배(門排)와 유사한 풍속이다. 문배는 한 해 동안의 액운을 물리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세화는 신년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으며, 서로간에 선물로 주고받았던 그림이다. 세화의 그림 형태는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고 다양한 형태의 소재들이 다뤄졌다. 화초와 선녀, 장군 등 인물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고 십장생이 소재가 되기도 했다.

복조리=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엮어 만든 조리를 벽에 걸어 두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쌀을 이는 조리처럼 그해의 행운을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신앙도 있었다.

야광귀 쫓기=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들어와 신발을 신어 본 뒤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다. 만일 신발을 잃어버리면 신발 주인은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래서 아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기도 했다.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신발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청참(聽讖)=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처음 들리는 소리로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여겼다. 또 먼 데 있는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전해진다.

윷놀이=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윷이라는 놀이도구를 사용해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기면서 노는 놀이. 사희(柶戱) 또는 척사희(擲柶戱)라고도 한다.

윷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전승되면서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윷패의 변화다. 윷패는 도·개·걸·윷으로 일컬어지는 사진법 놀이에서 도·개·걸·윷·모로 일컬어지는 오진법 놀이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른바 '뒷도'가 하나 더 생겨나서 육진법의 놀이로 변화됐다.

승경도(勝卿圖)=종이 말판 위에서 누가 가장 먼저 높은 관직에 올라 퇴관(退官)하는가를 겨루는 놀이. 종경도(宗卿圖)·종정도(從政圖)·승관도(勝官圖) 등으로도 불린다. 주사위 또는 5각형의 나무막대인 윤목(輪木)을 굴려 나온 수대로 말을 이동해 최종점인 봉조하(奉朝賀)에 도착해 먼저 퇴(退)한 사람이 승리한다.

원래는 계절에 상관없이 즐겼던 놀이였으나, 일반적으로 정월에 많이 했다. 일부에서는 승경도의 승부를 통해 일 년의 운세를 점치기도 했다.

돈치기=어린아이들이 양지바른 곳에 모여 서로 동전 한 개를 던지고 맞춰서 따먹는 놀이. 대표적인 명칭은 돈치기이고, 더러 엽전(葉錢)치기라고도 한다. 이 놀이는 운동도 되고, 돈을 따먹는 재미도 있어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는 인기 있는 놀이였다고 한다.

이미정 기자 mjlee@100ssd.co.kr
도움말 :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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